한국 청년이 베트남 학살 위령비를 찾아 헤맨 이유
고교생 시절 역사학도를 목표로 역사에 열정을 쏟았던 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논란'을 접했고, 한국이 가해국가로서의 역사를 지닌 전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정규 교육과정의 역사 수업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껴, 여러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위 '학살 부정론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민간인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왔으며, 국내의 여러 도서관과 박물관을 다니며 자료 탐색을 하는 와중에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전쟁기념관에는 '전쟁의 교훈'이 있는가 전쟁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한반도 역사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전쟁의 역사를 다루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한국군 해외파병의 역사를 다루는 '해외파병실'에서는 베트남전쟁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 전시관 초입에는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했다는 문구가 기재되어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파병에 법적 근거가 되었던 당시의 헌법 4조에는,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기존 헌법 제6조에서 국군의 역할을 "국토 수호와 침략적 전쟁의 부인"으로 규정하던 내용을, 박정희 군사정권이 반(反)헌법적인 권력 행사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며 해외파병을 추가로 삽입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국군의 해외파병이 가능한 법적 근거가 없자,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고는 헌법을 바꿔 기어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당시의 헌법 개정은 제5차 헌법 개정안 이유서에 "5.16 혁명과업의 수행을 완수하기 위하여"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반민주적이었고, 진정한 '국제평화'와도 전혀 무관했다. 둘째, 대한민국 사법부가 1심과 2심 판결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을 인정했다. 국제인도법의 근간인 제네바협약 중 무력충돌에 관한 의정서에서도 "민간인인지 적군인지 모호할 땐 민간인으로 간주하라"며 민간인 보호 원칙을 밝히고 있다. 세계평화를 위한 파병에 국제인도법을 위반하는 민간인학살이라니, 이 보다 모순된 전시가 있을까. 베트남전쟁 전시관 중앙에 위치한 '채명신 훈령 팻말 모형'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이 훈령은 민간인학살의 진실로 '지켜지지 못한 실패한 훈령'임이 밝혀졌다. 주월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 본인조차도 자신의 회고록에 "총알이 적군만 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면, 민간인도 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쟁기념관은 집착에 가깝게 이 전시를 고집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이러한 전시는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필자가 민간인학살을 이야기하자 "학살의 증거는 있냐", "학살의 주체가 한국군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소멸시효가 한참 지났는데 법적 근거는 있냐"고 민간인학살을 부정하며 비아냥거리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베트남 정부는 승전국이라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는 이야기 또한 필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베트남 피해자의 승소, 베트남 유학을 결심하다 2023년 2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인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 님께서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를 쟁취하셨다. 이에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하자, 베트남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강도 높은 유감 표명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건은 필자를 크게 고무시켰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의 진전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특히 소송에서 어느 나라 국가배상법을 적용해야할지가 법리적 쟁점인 것에 주목했다. 이번 판결에서는 재판부가 한국의 국가배상법을 적용했지만 다른 피해자·유가족들의 집단소송으로 확대될 경우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 문제가 그러했듯 언젠가는 베트남 국가배상법이 적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국가배상법 연구가 베트남전 진상규명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베트남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필자는 2017년 여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7회에 걸쳐 베트남 중부의 피해 마을을 찾는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유학을 위해 베트남에 건너 온 이후로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헌자료 및 전시물을 찾기 위해 베트남 중남부의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을 답사했다. 여러 학살 피해 지역에 있는 위령비와 집단묘지를 참배하러 다녔던 것까지 합하면, 베트남 피해지역을 약 12회에 걸쳐서 방문했다. 베트남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공식기록을 찾아 헤매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