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한인회 결성과 이념을 넘어선 통합의 불꽃
화중 지역 3개 한인회가 함께하는 '역사 복원 프로젝트', 그 대미를 장식할 세 번째 기록은 장시성(江西省)의 성도 난창(南昌)입니다.
우한(武漢)에서 항일 무장 투쟁의 든든한 기틀을 확인하고 , 창사(長沙)임시정부의 짧은 평화와 남목청의 시련, 그리고 영원한 한국인 류자명 선생의 이야기를 살피고 우리의 발걸음은 이제 화중 임정로드의 종착지인 난창으로 향합니다.
장시성과 난창은 단순한 피난처나 군사적 기착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중국에서 '한인회'라는 단어가 최초로 시작된 뜻깊은 요람이며, 좌우를 망라한 독립운동의 거두들이 이념을 넘어 굳건한 연대를 이뤄낸 외교의 최전선이기도 했습니다. '장시성 정착 1호 대한민국 교민'이자 장시성 한인회를 이끄는 박광보 회장의 시선으로, 이 뜨거웠던 연대와 투쟁의 역사를 샅샅이 파헤쳐 봅니다.
'비밀 단체'에서 '무장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된 의열단
난창은 의열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1926년 신익희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의열단원 성주식 연성대장이 훈련시킨 500여명의 군사조직인 분용대(奮勇隊)를 난창에 주둔중인 장개석을 만나 한중 군사 합작을 교섭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이종희 지사는 난창 중국 국민혁명군 부대에 근무하며 의열단 난창지부원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듬해인 1927년에는 김원봉과 의열단 핵심 요원들이 황포군관학교로 맺어진 주은래와의 인맥으로 '난창 무장 봉기'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의열단은 실전을 경험하며 '무장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되며 훗날 '조선 의용대'를 창립하는 계기가 됩니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역사적 결맹(結盟), '장시성 루산(여산廬山) 회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동아시아의 정국이 요동치던 시기, 난창과 인접한 장시성 북부의 명산 루산(廬山)에서 역사적인 회담이 열립니다. 중국 국민정부 장개석 총통의 초청으로 김구, 김원봉, 류자명 등 각 노선을 대표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거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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