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도 안 주기도 아닌 '원칙 있는 잘 주기'로 남북경협 재설계
한반도 정세는 분단 80년 역사상 가장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점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은 북한이 주창한 '적대적 두 국가론'의 공식화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말 이 노선을 처음 들고나온 데 이어,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조국 통일 3대 원칙 등 통일 관련 내용을 헌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개헌을 단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헌법에 대한민국과 접한 국경선 영토 조항을 신설하며 대한민국을 명백한 타국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지난 80년 동안 남북이 이어온 '체제 경쟁' 중심의 통일 지향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합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동서독의 비교
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과거 분단 시절 동독과 서독이 겪었던 분단 논리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중대한 차이점을 지닙니다. 체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동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두 국가론'을 공식화했습니다. 민족을 혈통이 아닌 '계급'의 문제로 규정하며, 서독을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족', 자신들을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민족'으로 분리·규정했습니다. 급기야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의 통일"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서독을 철저한 외국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는 현재 북한이 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남한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한 것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그러나 서독의 대응은 달랐습니다.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현실과 통일이라는 헌법적 가치 사이에서 '한 민족 두 국가(One Nation, Two States)'라는 정교한 논리를 정립했습니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통해 동독을 완전한 외국이 아닌 '독일 내의 특수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통해 서독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강경책(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하고,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유연함을 보였습니다. 동독이 체제 방어를 위해 선을 그었을 때, 서독은 "비록 지금은 떨어져 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민족이다"라는 끈질긴 동질성 유지 전략으로 교류를 이어갔고, 이것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현재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한의 영향력 차단과 적대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독보다 훨씬 극단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과거 서독이 보여준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무작정 북한의 두 국가론을 거부하거나 흡수 통일의 망상에 빠지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적대성을 줄여나가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첫 통일 백서인 2026년 백서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맞서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남북이 사실상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대화를 통해 평화공존을 이룩하겠다는,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통일을 꾀하겠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한 방향 전환입니다.
정치·군사 실용주의: 비핵화 환상을 넘어 '차가운 평화'로
두 국가 체제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안보 위협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최근 헌법에 국무위원장의 핵 무력 지휘권을 명문화하며 핵 포기 불가를 천명했습니다. 북한은 핵 개발을 체제 생존의 유일한 보루로 여기며, 비핵화 요구를 사실상 안보 포기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지난 35년간 한미 양국이 고수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은 사실상 실패했음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합니다. CVID의 가장 강력한 주창자였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석좌를 비롯한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는, 북한이 이미 다량의 핵무기와 고도화된 운반 체계를 갖춘 상황에서 실현 불가능한 선(先) 비핵화에만 집착하는 것은 한국의 국가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 할 뿐이라고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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