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로 내모는 '닥치고 대출'…"누가 좀 알려줬으면"
▶ 글 싣는 순서 ①"창업도 빚, 폐업도 빚"…대출에 갇힌 소상공인들
②"지원이라 쓰고 대출이라 읽는다"…벼랑 끝 상인에게 '그림의 떡'
③빚더미로 내모는 '닥치고 대출'…"누가 좀 알려줬으면"
빚의 늪에 빠진 소상공인들을 위한 지원제도는 적지 않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몰랐다"는 말이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이제 '얼마를 더 빌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창업부터 폐업, 재기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생존 시스템'을 구축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몰라서 못 쓴다"…지원제도 밖에 선 소상공인들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대출과 경영안정자금, 컨설팅, 사회안전망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만난 상당수 소상공인들은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알고도 복잡한 절차와 높은 문턱에 막혀 제도 활용에 애를 먹고 있다.
결국 지원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달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지원 체계가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정작 가장 절실한 수요자들(소상공인들)에게는 정책이 닿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의 '2025 자영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폐업이나 생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 노란우산공제 가입률은 35.2%에 그쳤다. 자영업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도 각각 20% 안팎에 머물렀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미가입 '이유'다. 응답자의 57.9%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비용 부담(23.2%)이나 복잡한 절차(12.1%)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다. 제도가 현장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장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11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서울시 자영업지원센터라는 기관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이모 씨도 "자영업자 고용보험은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알았다"며 "안내문이나 공문은 내용이 너무 어렵고 딱딱해 바쁜 자영업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성남 판교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올해 폐업한 박모 씨 역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정책대출이나 폐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결국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은행 대출과 카드론만 이용하다 빚이 더 늘었다"고 털어놨다.
제도를 제때 알지 못한 소상공인 대부분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은행 대출이나 카드론부터 찾았다. 정책의 공백이 곧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정부는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제 체감되는 것은 대출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현장에 닿지 않는다"
두 차례 개인회생을 딛고 인천 연수구에서 다시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정부 지원 체계의 본질적인 허점을 짚었다.
"국가는 절대로 당신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는다"며 "찾으면 어떻게든 길은 있는데, 그 길을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달 체계가 현장에 닿지 않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별로 지원사업이 흩어져 있다 보니 정보 접근성이 높은 사람만 혜택을 받고, 정작 위기에 놓인 이른바 '한계 소상공인'은 제도 밖에 머무르는 구조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소상공인24만 봐도 지원사업 종류와 신청 조건이 워낙 다양해 일반 상인이 접근하기에는 여전히 어렵다"며 "복잡한 제도 틈새를 '브로커'들이 파고들어 신청을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시장까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가 복잡할수록 결국 정보를 가진 사람만 혜택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창업 단계부터 사업 운영 전반을 꾸준히 관리하는 지원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단순히 정책을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전문가 멘토링 체계를 구축해 소상공인의 상황을 꾸준히 진단해야 한다는 것.
경영난에 빠졌을 때 무조건 대출부터 권할 게 아니라, 업종과 경영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해 △추가 대출이 적절한지 △업종 전환이 필요한지 △사업 구조를 재조정해야 하는지 등을 함께 분석하고 맞춤형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지원 방식도 현장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금성·대출 성격에만 치우쳐 구조적 체질 개선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다.
경기 수원시 행궁동에서 수제 육포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지역화폐 소비쿠폰은 우리 같은 업종에는 효과가 거의 없었다"며 "대출보다 더 절실한 것은 지자체 차원의 홍보와 판로 지원"이라고 밝혔다.
실제 그는 행궁동 관광 안내물과 할인행사 홍보물에 점포가 소개된 이후 방문객이 크게 늘었던 경험이 있다. 일회성 현금 지원보다 고객을 연결해주는 정책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현행 지원체계가 '무엇을 지원할지'에만 집중한 탓에 '누가 어떻게 활용하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출 중심에서 생존 중심으로"…정책 방향 바뀌어야전문가들은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지원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1100조원에 육박한 자영업 부채 문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안수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는 고금리·고부채 자영업자의 상환 부담을 줄이고 폐업 비용과 재취업을 함께 지원하는 '안전한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중기적으로는 추가 대출보다 세금과 공과금 등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과 상환 조건 조정을 통해 경영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영업자의 부채보유율이 44.7%에 달하는 상황에서 추가 대출은 또 다른 부채를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장기적으로는 창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음식·서비스업으로 창업이 집중되고 재창업자의 83.6%도 같은 업종을 선택하면서 과잉 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폐업 이후에도 기존 설비와 대출 부담 때문에 익숙한 업종으로 다시 뛰어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실패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안 부연구위원은 과잉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업종으로의 전환 교육과 체험 기회를 확대하고 연령과 업종별 맞춤형 사회안전망 안내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더 많은 대출'이 아니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금융 지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창업부터 경영, 위기관리, 폐업, 재기까지 연결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박주영 숭실대 교수도 보고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 해외사례 및 시사점'에서 "현상 유지형 지원에서 성장형 지원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금융지원과 디지털 전환, 기술혁신, 인력 지원이 각각 분절돼 있어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대안으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소상공인 통합생존플랫폼(SSP)' 구축을 제시했다. 창업 준비부터 경영, 위기관리, 폐업, 재기까지 전담 전문가가 상담과 교육, 금융, 판로, 멘토링을 연계하는 통합 지원체계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소상공인들이 빚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를 빌려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남게 할 것인가'를 묻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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