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에서 두 번이나 조별리그 탈락한 홍명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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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각) 개막한 2026 북중미 월드컵이 28일까지 조별리그 일정을 모두 마쳤다. 12개조 중 각 조 상위 2개 팀이 32강에 직행했고 조3위를 차지한 12개 나라 중에서 상위 8개 팀이 와일드카드로 32강 진출권을 따냈다. 탈락한 16개국을 제외한 32개국은 29일부터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국을 가린다. 한 경기만 패하면 바로 탈락이 확정되는 월드컵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생존한 32개 나라 중 한국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12일 체코전 2-1 승리 후 19일 멕시코전과 25일 남아공전에서 나란히 0-1로 패한 한국은 승점 3점을 따고도 조3위 12개국 중 10위에 그치며 32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남아공전 패배의 실망스런 결과에도 남아있는 '경우의 수'를 꼼꼼하게 따지며 내심 한국의 32강 진출을 염원했던 축구팬들은 허탈한 결과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이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번 북중미 월드컵까지 지난 11번의 월드컵을 봤다. 평소엔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불량 축구팬'에 가깝지만 월드컵 시즌만 되면 누구 못지않게 열정을 불태우고 한국 축구를 응원했다. 하지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내 월드컵 관람사(?)에서 크게 분노했던 대회가 두 번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같은 인물이 중심에 있었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깨어나는 '축구 DNA'
축구의 규칙도 질 몰랐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아버지,아버지 지인 분들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허정무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장면을 '직관'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본선을 본방 사수했던 기억은 없었고 이는 한국이 황보관의 멋진 골에도 3경기 전패를 당하며 탈락했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 체육 시간에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나는 고1이 되던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학교에서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시청했다(그 시절엔 수업 시간에 월드컵 본다고 학교에 민원을 넣는 학부모는 없었다). 비록 한국은 2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스페인전에서 서정원이 터트린 동점골과 독일전 홍명보의 중거리슛이 남긴 짜릿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비로소 학생 신분을 벗어난 나는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거리응원'이라는 것을 해봤다. 지금처럼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고 최소 수만 명이 운집하는 대형 규모의 거리 응원은 아니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밤 늦은 시간에 한국을 응원하는 재미는 상당히 짜릿했다(물론 멕시코전 1-3 역전패와 네덜란드전 0-5 완패 이후 벨기에전은 집에서 관람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최고의 기억으로 남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나는 전역 4개월 차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고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상암과 시청, 신촌의 호프집, 극장 등을 돌며 "대~한민국"을 외쳤고 한국은 4강신화로 내 응원에 화답했다. 심지어 홍명보의 마지막 승부차기로 승리한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는 강원도 속초로 '원정 거리응원(?)'을 가기도 했다.
나는 20대의 끝자락에 열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야구장에서 관람하며 야구팬들과 함께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새벽 시간에 열렸던 프랑스전에서는 강원도 춘천에 사는 친한 동생의 집에서 술에 취한 채로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을 관람했다. 비록 스위스전 0-2 패배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아쉬움보다는 즐거운 기억이 더 많이 남았던 월드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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