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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소론의 영수 남구만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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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소론의 영수 남구만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초부리를 다녀왔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었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덱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넓은 묘역이 펼쳐진다. 처음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생각보다 훨씬 큰 봉분이었다. 왕릉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규모였다. 문인석 하나 없이 단출하게 조성된 묘역이었지만, 그 단출함이 오히려 위엄 있게 느껴졌다.

이곳에 잠든 이는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다. 영의정을 세 차례 지낸 소론의 영수이자, 국민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를 남긴 문장가다. 그의 묘소는 정몽주 묘소와 같은 모현읍에 있다. 포은을 배향한 충렬서원도 이웃 동네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이 충렬서원 원장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평생 노론 주류와 맞서 싸웠던 소론의 대부가 왜 이곳에 잠들어 있을까.

초부리의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약천 묘역을 다시 찾은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추모가 아니다.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국익과 민생이 실종된 시대, 300년 전 그가 보여준 온건·절충의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용인은 특정 당파만의 땅이 아니었다. 치열한 당쟁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을 의탁하고 싶어 했던 깊은 품을 가진 곳이었다.

묘표에 새겨진 두 가지 비밀

묘역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묘표였다. 오래된 묘표는 세월의 풍파로 돌이 군데군데 부식돼 있었다. 그런데 기와지붕 형태의 개석 양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새겨진 문양이 보인다. 해태, 해치다. 그 옆에 서 있는 새 묘표에는 같은 해태가 훨씬 선명하게, 거의 강조하듯 새겨져 있었다. 후손들이 그 상징을 잊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해태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려내는 상상의 동물이다.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곳에 세우는 상징으로, 경복궁 광화문 앞과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 새겨졌다. 그 해태가 사대부 무덤에 새겨진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당파적 이익이나 성리학적 명분론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국익과 민생을 기준으로 삼았던 남구만의 소신을 말없이 증명한다.

비문의 첫 글자도 예사롭지 않다.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 묘비는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했다. 이미 망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남구만 묘표는 다르다. 명나라를 지웠다. 오직 '조선(朝鮮)'이라는 두 글자로 비문을 열었다. 노론 주류가 명분의 장막 뒤에 머물 때, 약천은 이 땅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홍순석 강남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를 당시 지식인들의 명·청 인식 변화와 연결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라고 설명했다. 사후에 새겨진 두 글자가 생전의 삶 전체를 압축해 보여준다.

백성을 살리고 영토를 지킨 소신

남구만이 살았던 17세기 후반은 격렬한 당쟁의 시대였다. 현실과 포용을 중시한 온건파로서 소론의 영수가 된 그는 단순히 정파의 이익을 좇지 않았다. 당파의 이익보다 나라의 실질을 우선하겠다는 선택이었다.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한 약천의 철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빛을 발했다. 그는 1671년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당시 함경도는 조선에서 가장 외지고 척박한 곳이었다. 그는 4년간 세금을 깎아주고 도로를 새로 내며 북방 방비를 강화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자 함경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다. 살아있는 목민관을 위해 사당을 지어 기린 것이다. 조선시대 관리에게 최고의 찬사였다.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1696년 안용복 사건이다. 당시 조선은 울릉도를 사실상 비워두는 공도(空島)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동래 출신의 어부 안용복은 그 섬에서 일본 어민을 쫓아내고 일본까지 건너가 영유권을 직접 따지고 돌아왔다. 나라가 하지 못한 일을 민초 한 사람이 해낸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안용복은 허락 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처형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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