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으면 운동도 없다"... 그가 대구 시민운동 20년을 버틴 까닭

"사람이 없으면 운동도 없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는 늘 거기에 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사회를 보고, 집회 현장에서는 의자를 나르고, 토론회에서는 발언 순서를 조율한다. '아시바'(비계)를 세우고 현수막을 들고 있다가 어느새 마이크를 잡고 있다. 대구 시민사회에서 장지혁은 그런 존재다. 같이 있으면 든든하고, 그가 빠진 자리를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 누군가는 그를 두고 '대구 시민사회의 연결선'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빈틈을 메우는 활동가'라고 부른다.
때때로 그는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이기도 하지만 집회와 기자회견, 성명서와 회의록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한 번씩은 궁금해졌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이자 20여 년 가까이 지역 시민운동 현장을 지켜온 장지혁을 지난 6월에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대구에서 데모하는 사람입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그의 삶이 들어 있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집회를 준비하고, 정책을 검토하고, 행정정보를 찾아보고, 민원을 제기하고, 토론회를 연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정해진 업무분장도 없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하는 것이다. 현재 그는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 직함보다 '조율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더 편하게 여긴다.
지역 시민사회 안의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연결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고, 때로는 브레이크를 걸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등을 떠미는 역할을 한다. 공식적인 업무보다 비공식적인 만남과 전화, 조율이 훨씬 많은 자리다. 다음 주쯤 되면 좀 한가해지겠거니 해도 그런 날은 잘 안 오지 않는다.
그가 신입 활동가였던 시절 보다 지금 시민사회 활동가는 줄었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 바빠졌다. 예전처럼 편하게 활동가들이 술 마시고 하는 빈도수는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젊은 활동가들이 잘 안 모인다고 하는 말들에는 반대한다. 우리도 이제 짬바가 되어 청년 활동과는 멀어진 거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모른다고, 그렇게 단언하지 말자고 말한다.
장지혁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에게 철학은 세상의 정답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을 더 깊게 만드는 학문이었다.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세상이란 무엇인가, 왜라고 묻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묻는다면 누구에게 묻는 것인가를 따져 묻는 것처럼 생각과 언어, 대상을 분석하는 거죠. 철학은 그런 근본적인 것들을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거라서 그런 것들이 저는 재밌어요. 여전히 어렵고요."
그는 여전히 철학을 좋아한다. 철학책을 읽는 즐거움을 무협지에 비유했다. 고수의 비급을 읽는 것처럼 논리가 전개되고 세계가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현실의 세계가 있었다.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운동 현장으로 향했다. 2002년 지방선거,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에게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그렇게 학생 운동과 사회 운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운동을 계속하는 것에는 고민이 깊어졌다. 군대에 갔다 오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체질이 아니라 빨리빨리 반응하는 게 내 기질에 더 맞다는 걸 보게 되었다. 일반 취업도 고민했지만, 대학생 시절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대추리 투쟁과 노동 현장 연대를 적을 수는 없었다. 이런 활동들을 빼고 이력서를 쓰려니 적을 것이 없었다. 그러다 대구참여연대에서의 상근활동가로, 삶은 점점 운동이 되어 갔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활동가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건 쉽죠. 그런데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 뭘 어떻게 바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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