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안 해요” 삼전 반도체 떠난 최수진 바텐더의 ‘피어오름’[피플]
ONP 요약
한국의 큰 회사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조건과 임금을 달라며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회사의 경영 결정까지 협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너무 많은 권한을 노조에 주는 것 아니냐며 반대하고 있다.
진보 성향: 노동자 권익 확대 — 반도체·금융·유통 등 주요 산업에서 노조가 초과이윤 배분과 투자 계획 교섭으로 정당한 권리를 확대하려는 중.
중도 성향: 정부-노사 입장 불일치 — 정부의 새 노조법 해석과 노조·사측의 기대 수준이 맞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분규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 성향: 무분별한 노조권 확산 — 기업 경영 결정까지 교섭 범위에 포함시키려는 노조 요구는 경영권 침해이자 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서울 강남구 언주로 그랜드 머큐어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강남 ‘더 바’(The Bar) 최수진 바텐더.
그의 출발점은 바도, 호텔도 아니었다. 반도체 현장이었다.
최 바텐더는 고등학교에서 반도체를 전공했다. 이후 중견 반도체 기업을 거쳐 2021년 3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를 만드는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에서 품질검사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사내 직무 전환 제도를 통해 품질팀 임원 행정지원과 임원 비서직도 맡았다.
삼성전자, 그것도 DS부문은 단순히 좋은 직장이 아니다. 안으로는 고액 연봉과 풍부한 복지, 높은 성과급 기대가 따르는 이른바 ‘신의 직장’이고, 밖으로는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산업 현장이다.
최 바텐더도 그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7월, 그는 그 울타리를 뒤로했다. 자신에게 더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최근 기자가 그를 만나 던진 첫 질문은 당연히 삼성전자 퇴사를 후회하느냐는 것이었다.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명쾌했다.
“퇴사한 것은 후회가 안 돼요. 다만 주식을 판 건 조금….”
최 바텐더가 지난해 주식을 판 이유는 분명했다.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매도가는 이른바 ‘6만전자’ 수준에 불과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공장에서 제조 관련 직무를 하다가 사무실로 옮겨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다 보니 ‘내게는 서비스직이 더 잘 맞는다’는 마음이 들었어요”라며 “그래서 이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후회는 없을까. 아무리 서울 강남의 5성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모두가 선망하는 국내 최고 직장 중 하나를 떠난 선택이 아닌가.
최 바텐더의 답은 분명했다.
“지금 생활하는 게 너무 행복하고,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시절은 안정적이었지만, 마음이 머무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삶의 낙 같은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하루하루 이겨내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 다였거든요.”
지금은 다르다.
“술도 만들고, 손님들과 친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반도체의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던 시선은 이제 재료의 균형과 조합, 고객의 반응을 향한다. 공정의 완성도를 따지던 태도는 술의 맛과 질감,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는 감각으로 옮겨갔다.
퇴사 뒤 그는 바텐더로서 새 출발을 준비했다. 유학에 앞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주기능사 자격도 취득했다. 막연히 해외로 떠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을 향해 단계적으로 준비한 셈이다.
올해 1월에는 한 달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머물렀다. 유러피언 바텐더 스쿨(European Bartender School) 바르셀로나 캠퍼스에서 바텐딩 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현지에서 얻은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바텐딩 스킬도 배웠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의 활기찬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많아 여러 억양의 영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2월 초 귀국한 최 바텐더는 같은 달 23일 이 호텔에 입사해 더 바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가 더 바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정훈 지배인, 김서윤 당시 캡틴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선배 아래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천부적인 재능 덕이었을까. 선배들의 긍정적인 영향 때문이었을까. 성과는 빠르게 나왔다.
그는 입사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6월19일 ‘2026 코리안컵 칵테일 대회’ 창작 칵테일 프로리그에 출전해 ‘피어오름’으로 은상을 받았다.
피어오름은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적 디저트 칵테일이다.
최 바텐더는 작품명에 관해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선배님이 은상을 받은 ‘오름’을 조금 변형한 이름입니다”며 “선배님 작품에 대한 존중을 담아 지었습니다”고 설명했다.
기주는 ‘소주다움 50 로즈골드’다. 50도 프리미엄 소주지만, 최 바텐더는 강한 술맛보다 화사한 인상을 먼저 봤다.
“50도여서 술맛이 강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생각보다 화사한 꽃향기 같은 느낌이 많이 나는 술이에요. 도수에 비해 먹기 편합니다.”
자신만의 해석을 위해 선택한 것은 막걸리 크림과 대추차 진액, 오미자였다.
최 바텐더는 “남들이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기법을 사용하고 싶었어요”라면서 “막걸리 크림을 만들어 칵테일 위에 얹고, 그 위에 대추차 진액으로 직접 그림을 그렸죠. 동양화가 피어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주다움 50 로즈골드, 살구 리큐르, 수정과, 막걸리 크림, 대추차, 오미자 등 한국적인 재료가 여럿 들어간 만큼 균형을 잡는 일이 관건이었다.
그는 “처음 음료를 배합할 때 수정과 맛이 생각보다 많이 강했어요”라며 “양을 계속 줄이고 다른 재료를 더 넣어보는 등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선배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줘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비주얼도 중요했지만, 흰 막걸리 크림 위에 매화 가지와 꽃잎이 피어나는 듯한 장면을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 바텐더는 “수묵화처럼 가지를 직접 그려야 했죠. 매화꽃이 피어나는 느낌을 내려 했지만, 원하는 만큼 새빨간 색감을 내기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결국 오미자를 말려 믹서기로 최대한 잘게 다져 뿌렸답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피어오름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처음 피워낸 꽃이다.
피어오름은 이제 더 바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최근 급증한 외국인 고객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
최 바텐더는 “외국인 고객들이 동양 쪽 분위기를 좋아하시다 보니 굉장히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고 기대했다.
그에게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방향도 있다.
“선배님이 논알코올 칵테일로 상을 타셨어요. 술을 못 먹거나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논알코올 칵테일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바 김승수 바텐더는 5월3일 전남(현 전남광주특별시) 보성에서 열린 ‘2026 보성 티마스터컵’에서 논알코올 칵테일인 ‘보성 호지 마티니’로 금상을 받았다. 보성차를 베이스로 한 티 베리에이션, 즉 차 음료 개발 역량을 겨루는 자리에서 출품작 130여 점 중 두 번째로 높이 올랐다.
김 바텐더는 논알코올 칵테일로 한국적 음료 경험을 넓히고 있다.
촉망받는 티 소믈리에이자 음료 개발자였던 그는 왜 바텐더가 됐을까.
김 바텐더는 “차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넓게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다 그 방법이 칵테일이라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논알코올 칵테일은 단순히 술을 빼는 음료가 아니다. 알코올이 없는 만큼 구조를 더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김 바텐더는 “알코올을 쓰지 않으면 아무래도 보디감이나 풍미를 살리기가 어렵습니다”며 “그래서 허브의 레이어를 주거나 과일 특유의 보디감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고 짚었다.
차 업계에 있다 보니 보성을 비롯해 경남 하동, 제주 서귀포 등 차 주산지를 자주 찾아 한국 차의 가능성을 고민해 왔다.
그는 “한국 차는 외국 차에 비해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외국 차가 더 고급스럽다는 편견도 있습니다”며 “차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 차가 더 다양해지고 프리미엄화된 음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고 강조했다.
보성 호지 마티니는 그 고민에서 나왔다.
‘호지차’는 볶은 차 특유의 구수한 맛이 강해 주로 크림이나 라떼류에 쓰인다. 김 바텐더는 이 차를 더 고급스러운 논알코올 칵테일로 풀어내고 싶었다.
“논알코올인데 음료 같지 않은, 캔 음료나 편의점 음료 같지 않은 느낌을 주고 싶었죠.”
그는 ‘밀크 워싱’ 기법을 활용했다. 우유 단백질이 응고되며 색과 성분이 분리되고, 아래로 떨어지는 유청을 사용하는 원리다. 호지차의 볶은 맛에 부드러움을 주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김 바텐더는 “호지차는 세게 볶아 만들다 보니 개성이 강합니다”며 “유제품과 잘 맞는 특성은 살리면서 부드럽고 깔끔하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고 설명했다.
두 바텐더가 칵테일을 바라보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김 바텐더는 클래식 칵테일의 원칙과 도전적인 시도의 융화를 중시한다.
“칵테일에 정답은 없지만, 이전부터 만들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에 기반한 칵테일을 어떻게 잘 지키고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최 바텐더는 시각적 경험에 무게를 둔다.
“요즘 칵테일은 입보다 눈으로 먼저 먹어요. 사진을 찍었을 때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답게 담기는지, 퍼포먼스적인 요소와 콘셉트가 중요할 수밖에 없죠.”
전통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도 각자의 색이 있다.
김 바텐더는 “전통적인 재료를 쓴다면 고유한 맛 자체를 해치지 않아야 합니다”며 “어떻게 재료를 배치하고 어떤 기법을 택할지가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습니다”고 털어놓았다.
최 바텐더는 “전통적인 재료를 넣을 때 원물을 바로 넣거나 단순히 주스를 넣는 대신 진액을 사용하거나 크림에 살짝 혼합하는 식으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활용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칵테일을 미식 경험으로 확장하는 데는 두 사람의 생각이 맞닿아 있다.
김 바텐더가 “칵테일도 음식이나 디저트와의 페어링이 더해져야 해요”라고 운을 떼자, 최 바텐더는 “칵테일은 달콤하다는 인식이 있어요. 음식과의 페어링을 많이 고려해야 하죠”라며 거들었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한 지 2개월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는 이미 단단해 보였다.
김 바텐더는 최 바텐더를 두고 “똑부러지고, 서비스직에 정말 잘 맞는 후배예요. 제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을 나누면서 많이 도와주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최 바텐더가 김 바텐더에게 화답했다. “힘든 것은 늘 선배님이 먼저 나서서 해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죠. 혹시 컨디션이 안 좋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부담 없이 저를 불러주세요.”
안주할 수 있는, 안주해도 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최 바텐더는 지금, 그곳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자리에 서 있다.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 힘을 싣듯 그 선택은 하나둘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곁에는 한국 차와 논알코올 칵테일로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선배가 있다. 자극이자 영감이다.
피어오름과 보성 호지 마티니는 맛도, 모양도, 성격도 다르지만 같은 화두를 던진다.
한국의 재료와 스토리텔링을 국내외 고객에게 어떻게 새로운 경험으로 전할 것인가.
◎공감언론 뉴시스 ace@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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