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왔다가 3개월 만에 이주... "경주에 '너른벽' 세우고 싶었죠"

퀴어, 장애, 정신질환, 비인간, 계급, 섹슈얼리티 등등을 간판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책방이 생겼다는 친구의 말에 그곳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렇게 연을 갖게 된 책방지기는 어느 날엔 기후행진에, 어느 날엔 성매매 집결지에 어느 날엔 이주민 노동자와 함께였다. 경주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이 되기도 한 박슬기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였다. 아직 활동가로서의 자신을 주춤하지만, 고민하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고, 하나 둘 실천을 해나가는 그를 기록하게 되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 슬기님, 먼저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네. 경주에 이주해서 산 지 3년차 되는 박슬기입니다. 2023년 2월에 독립서점 '너른벽'을 오픈하면서 경주로 주거 이전을 완료했으니, 공식적으로 경주에서 거주한 지 3년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슬기님은 경주로 이주한 것이니까, 경주 태생이 아니고 그 전에 경주에서 활동한 것도 아닌데요. 자, 어떻게 경주로 오게 되셨는지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우연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그때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도 해보고,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을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지역 소멸 마을에 청년들이 입주해서 살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경주의 감포라는 바닷가 마을이었고 거기에 입주하면서 경주로 오게 된 거였어요.
그렇게 우연히 경주에 여행을 오면서 경주의 원도심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일주일 정도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경주를 발견하고 알아가게 되었어요. 재미난 이 풍경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다. 정말 막연하게 아무 틀도 없이 생각하다가! 이주를 결심했어요. 그때가 한 여름이었는데, 이후에 경주를 다시 오가면서 집도 구하고, 책방도 구하고 3개월 만에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
- 추진력이 엄청난데요. 우연히 온 경주이지만, 서울이 아닌 이 지역의 어떤 매력과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슬기님은 경주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고,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서울에서 살았어요. 왜 사람들은 항상 서른 살이 되면 뭘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시기였던 거 같아요. 코로나 시기가 아직 진행 중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일도 그만뒀고. 서울에서는 6년 정도 살았습니다.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주임 직책까지 달았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자기계발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올라가야지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항상 사람이 마음먹는 것과 현실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일을 계속 다니면서 사실은 활동을 했어요.
예를 들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반성매매 활동 모니터링 이런 것을 했는데 그걸 관심 있게 했고.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성문화활동을 하면서 대면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고, '아,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게 됐죠. 페미니즘 관점에서 학습도 하고,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그때 좀 알게 되었죠. 그런 활동들과 임금노동을 하는 생계적 문제에서 고민을 정말 많이 됐어요. 활동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던 거죠.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고, 또 공부가 많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당연히 페미니즘 리부트가 제게도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요. 젠더 폭력 관련된 집회에도 많이 나갔고요.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관점들이 있고, 다른 목소리도 계속 출현하는구나. 나는 어느 것을 좀 더 봐야할까? 공부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과 의문들을 가지며 고민도 했고. 그렇게 공부도 하고 하면서 지금 하는 활동들과도 만나게 된 거죠."
-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와 관련 활동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고민의 영역이 활동과 만나졌던 슬기님이었네요. 그런데 우연히 경주에 와서 여기서 살아볼까? 결정을 내리고 무턱대고 이주해서는 책방을 열었단 말이에요? 책방이었던 이유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 그건 명확했습니다. 우선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술적인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고, 지역에 와서 일은 해야 되는데,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 눈에 보이고. 뭔가 크리에이터를 하든 알바노동이나 비정규 노동이든 해야 되는데, 제가 여기까지 와서 또 다르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게 있잖아요. 서울이 싫어서 떠났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 그 공간을 만들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 그런 열망.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재밌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평소에 책을 꾸준히 완독해온 건 아니지만, 책이랑 가깝게 살아왔기에 책이란 물성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책방을 열었어요. 이 과정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경주서 살았던 기간 동안 원도심을 돌아다니면서 수중에 맞는 조건의 공간을 찾았고. 왜 그때가 서른 살이라고 했잖아요. 저한테 되게 중요했던 건데, 혼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시기였어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생각만으로도 오는 설렘도 있었고. 물론 어떤 긴장도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를 추동하는 힘도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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