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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서편제> 송화였던 이자람이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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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서편제> 송화였던 이자람이 남긴 말

1993년, 영화 〈서편제〉는 판소리와 '한(恨)'의 정서를 대중문화의 한복판으로 불러냈다. 중학교 단체 관람으로 그 영화를 처음 만났던 나에게 이 작품은 오랫동안 '판소리를 소재로 한 국민영화'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 뮤지컬 <서편제>의 2026년 시즌을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분명하다. 2010년 초연부터 '송화'를 연기해 온 이자람이 이 역할과 작별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국악감독을 겸한 그는 송화를 단순히 '한 많은 여인'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소리에 대한 사랑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로 해석해 왔다.

16년의 마지막 무대를 지켜본다는 것은, 한 배역의 완성과 한 배우의 이별을 동시에 목격하는 일이었다(이자람의 공연은 5일로 끝났으나, 다른 배우들이 출연하는 남은 공연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오는 19일까지).

판소리 뮤지컬이 아니라, 판소리를 둘러싼 뮤지컬

공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뮤지컬이라는 서양의 무대 형식이 판소리와 어떻게 만나는가였다. 그런데 실제 작품에서 전통 판소리 창법이 전면에 등장하는 곡은 예상보다 많지 않다. 윤일상의 음악은 대표곡 '살다 보면'을 중심으로 발라드와 록, 팝, 전통음악의 어법을 폭넓게 오간다.

이를 판소리 비중이 작다는 아쉬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뮤지컬 <서편제>는 판소리를 계속 들려주기보다, 판소리가 점차 대중이 듣지 않게 되어가는 시대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소리가 사라지는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판소리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의 '심청가'는 앞서 흘러나온 인물들의 울음과 침묵이 마침내 하나의 소리로 수렴되는 순간이 된다. 이 작품에서 판소리는 양적 중심이 아니라, 모든 음악이 도달하고자 하는 정신적 종착점으로 존재한다.

작품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은 송화가 시력을 잃어가며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절규하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이 듣는 것은 서편제 특유의 애절함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에 대한 원망이다.

유봉은 큰 소리꾼을 만들기 위해서는 깊은 한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극에서도 등장하는 득음을 위해 똥물까지 먹어야 한다는 말은 예술가의 고행을 영웅화해 온 오래된 관념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작품은 유봉의 신념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되묻는다. 위대한 예술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는가.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운명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택이다. 그녀의 한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민족적 정서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상처다. 송화가 위대한 소리꾼이 되는 과정 역시 그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녀의 성취가 숭고한 것은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을 유봉의 논리와는 다른 소리로 바꾸어냈기 때문이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래가 단순한 체념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송화에게 살아진다는 것은 고통을 잊는 일이 아니다. 원망과 슬픔을 몸 안에 지닌 채, 그것들에 완전히 삼켜지지 않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면 귀도 바뀐다

극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판소리에서 서양음악과 새로운 대중음악으로 옮겨간다. 유봉에게 이 변화는 타락이자 패배이지만, 동호에게 새로운 음악은 낡은 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다.

이 변화는 비단 국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때 록앤롤이 젊음의 언어였고, 이후 팝과 힙합이 시대의 감각을 새롭게 조직했듯, 사람들의 귀에는 언제나 유행과 세대의 이동이 작용한다. 어떤 음악도 단지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중심에 남아 있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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