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마주한 아이의 질문

날이 밝았다.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지갑은 사라졌고, 수중에 남은 돈은 일본 돈 2만 5천엔, 우리돈 25만 원에 불과하다. 돌아갈 차비를 생각하면 남은 3일 동안 쓸 수 있는 돈은 15만 원 정도다. 이 돈으로는 이 숙소에 머물면서 밥만 간신히 해결해야 할 수준이다. 렌트카가 없으니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
암담한 상황이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이왕 이리 된 거 이번엔 이런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 내 한국카드는 일본인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신분증은 한국에 돌아가서 차근차근 재발급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다행히 지갑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한 편으론 들었다.
무엇보다 함께 간 일행들이 보여주는 밝은 태도가 가장 컸다. 아이들은 해외에 온 것만으로도 신나 보였고, 아내는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서영(가명)은 다 같이 해외에 왔다는 걸로 즐거워했다. 그런 기운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내가 봐둔 식당이 있다면서 오전 식사 장소를 제안했다.
숙소에서 1분 거리였다. 주인할머니가 무척 친절했다. 일본 드라마에서 볼 법한 '호호' 할머니였다. 웃는 인상과 친절한 태도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전날 타고 온 고속버스 회사 번호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혹시 전화를 걸어서 지갑 유무를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고. 이 대화는 일본어 능통자인 서영이 맡았다. 주인할머니는 '하이' 하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지은 할머니가 '스미마셍'(미안해요)이라면서 나타났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지갑은 없었다면서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단다. 우리는 밥을 먹었다. 일본 가정식이 나왔다. 오키나와 대표 음식인 고야(여주)로 만든 나물이 눈길을 끌었다. 닭고기 구이는 너무 부드러웠다. '살살 녹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이시'(맛있다)라면서 엄지를 세웠다.
밥을 먹고 다 같이 도보 10분 거리 해안가인 '고릴라촙'에 갔다. 스노클링 명소로, 내가 숙소를 여기에 잡은 이유였다. 이미 전신 수영복에 산소통이나 스노클링 장비를 멘 이들이 많았다. 여기 해안은 바로 코 앞에서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신났고, 나 또한 신났다. 서영은 저 멀리서 우리들 사진을 찍었다.
오후 일정은 '추라우미수족관'이었다. 200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수족관이었던 곳이다. 살아있는 어류 중 가장 거대한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숙소에서 가까웠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할인티켓을 팔았다.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티켓을 살 생각이었다. 그때 아내가 이메일을 확인해 보라 말했다. 알 수 없는 수신자와 함께 경찰서 연락처,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왜 경찰서 연락처와 사진이 있는 거지?
일본경찰서를 체험하다
모두가 한참을 머리를 맞댄 결과, 오전에 밥을 먹은 식당 주인 할머니가 '이곳에 가보라'면서 사진을 보낸 게 아닐까란 결론을 내놨다. 주인할머니에게 혹시나 하면서 내 이메일을 남겼기 때문이다.
추라우미수족관 티켓을 파는 식당에 이 이메일을 보여주며 무슨 뜻이냐고 해석을 부탁했다. 물론 통역은 서영이 맡았다. 이메일을 들여다보던 식당 주인이 깜짝 놀라며 본인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손짓했다. 그 차가 도착한 곳은 '모토부경찰서'였다. 세상에 일본에 와서 경찰서 체험을 할 줄이야.
경찰서 민원실까지 따라 들어간 식당 주인은 경찰관을 붙들고 한참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보통 이런 경우에 그 다음 상황은 "알겠으니 연락처 놔두고 가세요.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이다. 예상과는 달리 경찰관이 바로 전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직후 경찰관이 식당 주인에게 말하고, 식당 주인이 서영과 대화를 하는, 3중통역을 거쳐 나에게 내용이 전달됐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