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로 전향한 일제 고등계 형사, 김병호

지난달 하순, 천안 독립기념관을 견학하였다. 제6전시관(새로운 나라)에서 두툼한 한지로 묶은 '임시정부와 국내 국민과의 연계 더 알아보기'의 안내 서책을 넘겨보다가 〈장강일기〉(정정화, 학민사, 2014)를 알게 되었다. 이 책자에서 '고중민이라는 사람' 편을 읽고 고중민(1911~1958)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중경에 머물고 있던 정정화 여사는 남편이 새로 사귄 친구를 자주 만나는 것을 경계한다.
최근 국내에서 북경과 상해를 거쳐 중국 국민당의 지하조직을 통해 중경으로 온 고중민高仲民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얼굴이 준수하게 생겨 호감이 가는 편이긴 했으나, 첫인상이 무언가 꺼림직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중략) 고중민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았다. "뵐 면목이 없습니다. 사실은 제가 한때 왜놈 밑에서 형사노릇을 했었습니다."(〈장강일기〉 266~267쪽 내용)
고중민의 본명은 김병호(金炳豪)다. 그는 일제 고등계 형사로 독립운동에 관련된 어느 대학생을 연행하다가 양심에 따라서 풀어주고는 종로경찰서로 돌아가 "부주의로 놓쳤다"라고 허위 보고해 1940년대 초반에 해직당했다고 전해진다. 독립운동사 자료에 의하면 국내를 떠나기 약 1년 전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포스러운 존재, 일제 고등계 형사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들은 독립운동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이들은 '요시찰 인물' 명단을 작성하여 촘촘한 감시망을 운영했다. 독립운동에 연관된 학생들을 색출하기 위해 고등계 형사들은 강압적인 수사뿐만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과 정보전을 펼쳤다.
형사들은 학생인 척 교복을 입거나,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대학 강의실에 잠입했다. 교수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의를 하는지,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비밀 결사가 조직되는지 기록했다.
형사들은 고문이나 협박을 통해 약점을 잡은 학생을 회유하여 친구들을 밀고하게 유도하기도 했다. 형사들은 민족의식이 강한 학생들의 하숙집에 자주 들이닥쳤다. 책상 위에 놓인 금서(禁書), 독립운동 관련 유인물, 일기장이나 편지를 찾아내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고중민은 고등계 형사 중에서 독립운동 혐의를 받는 대학생을 추적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양심을 지키려 했다고 한다.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독립운동 관련 서적이 든 상자를 못 본 듯이 지나치거나, 다른 방에 숨겨둔 물건을 발견하고도 "여기엔 아무것도 없군"이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상부에 제출할 보고서에는 "혐의점 찾을 수 없음"이라고 기록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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