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속에 대구 골목길을 걷다

7월 14일, 대구의 골목길에는 뜨거운 여름 햇살이 무섭게 내리쬐어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 흘러내리는 대프리카의 무더위였지만, 열기 속에 고요하게 가라앉은 골목의 풍경은 도리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후 늦게 시내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의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기 전, 나는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시내에 도착했다. 중구 골목투어 5코스인 '남산100년향수길'의 구석구석을 이번 기회에 오롯이 '혼자' 찬찬히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방을 둘러메고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염 속 홀로 찾은 보현사 외벽과 관덕정의 숨결
혼자 걷는 길의 첫 목적지는 '보현사(옛 동화사 포교당 터)'였다. 이 뜨겁고 고요한 절 마당은 사실 대구 3·1 만세운동의 거룩한 도화선이 된 곳이다. 1919년 3월, 서울 불교중앙학림의 윤학조 스님이 만세 시위 소식을 품고 내려와 동화사 지방학림의 학인 스님들과 의거를 도모했다.
3월 28일 동화사 심검당에서 만세를 결의한 9명의 청년 학승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곳 포교당에 모여 밤새 태극기를 제작했다. 그리고 3월 30일 오후, 남문 밖 시장(덕산정 시장)으로 뛰어나가 수천 군중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다행히 보현사 외벽에 조성된 만세 의거지 스토리보드는 별도의 관람 제한 없이 언제나 자유롭게 지나가며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폭염 속에 고요히 잠긴 벽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서슬 퍼런 식민 권력 앞에서도 당당히 의를 외치다 옥고를 치른 청년 스님들의 기개를 가만히 음미해 보았다.
보현사를 뒤로 하고 인근의 '관덕정 순교기념관'으로 향했다. 조선시대 경상감찰사가 군사 훈련을 감독하고 무과 시험을 치르던 연병장이었으나,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믿음을 지키다 처형당한 피비린내 나는 순교지이기도 하다. 이곳 관덕정 역시 골목을 지나는 이라면 언제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인자한 미소를 지은 성 이윤일 요한 동상이 먼저 평화롭게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대구대교구 제2주보성인인 그는 1867년 이곳에서 참수치명 당했으며, 그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 이곳 지하 경당 돌제대에 봉안되어 있다.
지하 1층 당과 메모리얼 홀, 유해 현시실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마침 지하에서는 장수경 베로니카 작가의 'THE WAY' 전이 열리고 있었다. 2층과 3층 전시실을 거쳐 탁 트인 전망대로 올라갔다.
이곳 전망대 누각에는 화려한 단청이 칠해져 있어 멀리서 보면 언뜻 사찰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령을 뜻하는 비둘기, 포도나무, 구름, 알파와 오메가, 물고기, 백합, 십자가 등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문양들과 한국 전통의 멋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12가지 상징 문양을 하나씩 카메라 프레임에 담아내는 일은 찌는 듯한 더위를 잊게 할 만큼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관덕정 벽면에 적힌 '기억의 땅, 땅의 기억: 순교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문구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이어받아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마음 깊이 와닿았다.
굳게 잠긴 문우관의 아쉬움, 배롱나무 꽃이 달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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