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에 스러진 검사… 동료가 살해당해도 침묵한 검찰

검찰 보완수사권은 불허하되 보완수사 요구권은 허용할 수도 있는 방향으로 지금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어떻게든 보완수사권을 살리려는 시도 역시 만만치 않다.
요즘 들어 주요 형사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며 '이래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자주 나온다. 광주 여자고등학생 피살 사건과 관련해서는 '장윤기 측과 경찰의 유착',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 등을 강조하며 보완수사권 필요성을 역설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경찰 수사를 보충하고 시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을 추동하는 근본 요인은 신뢰의 문제에 더 가깝다. 경찰 수사의 보완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검찰 수사를 선뜻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적 정서가 지금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의 검찰 수사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만 집중됐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 박찬길 검사다. 한국 검찰이 박찬길처럼 수사권을 행사했고 박찬길처럼 진실을 추구했다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한 뒤 보완수사권마저 차단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생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찬길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평안남도 남포특급시를 마주 보는 지금의 황해남도 은율군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시점은 1910년 4월이다.
<역사학연구> 2024년 제95집에 실린 임송자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순천지역 여순사건의 재조명과 박찬길 사건'에 따르면, 박찬길은 스물다섯 살 때인 1935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3년 뒤 졸업했다.
이 논문은 그가 "조만식의 제자였으며 기독교도"였다고 알려준다. 일본 유학 경비도 장로교총회에서 후원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의 기독교도였다.
그가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이고, 검사로 임용된 것은 그해 11월이다. "공주지방법원 특별검찰부 사법시보, 서울지검 검사시보를 거쳐 1947년 11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차석검사로 부임했다"고 논문은 말한다.
"검사로서 강직하게 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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