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롤모델이었던 푸틴…우크라전 후 ‘하위 파트너’로 전락”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는 집권 초기 롤모델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위 파트너로 전락했다며 그 배경을 집중 분석했다.
4년간의 전쟁과 서방의 제재에 따른 경제적 고립으로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관계가 점점 불균형 상태로 변해 구걸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한 때 푸틴을 존경했지만 이제 관리에 나섰다고 WSJ는 표현했다.
◆ 기대에 못 미친 푸틴의 14번째 방중…가스관 건설 약속 못 받아내
푸틴은 2000년 집권 이후 5월 14번째 중국을 방문하면서 에너지 분야에서 획기적인 합의를 이룰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러시아의 20년 숙원인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틴 보다 먼저 도착한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 최고경영자 등 대표단에 중국 관리들은 러시아 내수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결된 42건의 협정과 공동 선언에서 가스관 건설은 없었다.
독일의 베테랑 기업인 요르크 부트케는 “시 주석은 마치 황제가 성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푸틴을 맞이한 뒤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 中 지원하에 유지되는 러 전시 경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원은 강화됐다. 중국이 러시아의 전시 경제를 유지해 왔다.
러시아산 석유를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고, 방위산업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했다. 서방의 제재를 견뎌낼 수 있도록 금융 인프라를 제공했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러시아의 전쟁 종식 압박을 촉구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시 주석은 1960년대 소련이 중국을 ‘동생 국가’로 몰아세우며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 동맹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 교훈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고 WSJ는 진단했다.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비공개적으로는 양보를 얻어내려 애쓰고 있다.
이번 푸틴의 방문은 시 주석이 2013년 3월 국가주석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모스크바를 선택했던 당시와는 완전히 달랐다고 WSJ는 전했다.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은 시 주석이 푸틴을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존경심을 표했다고 말했다. 당시 푸틴은 최고지도자가 된지 13년이 됐다.
시 주석은 푸틴이 석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를 운영하면서도 세계 정상 회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 발목 잡아…‘역 닉슨 전략’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발목을 잡고 시 주석에게는 구조적 권력 이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했다.
한때 거의 대등했던 파트너십을 이제 중국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는 관계로 바꿔놓았다.
양측은 ‘제한없는 관계’라고 하지만 공통된 가치관이나 문화도 없다.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공동의 적대감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균열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이른바 미국의 ‘역 닉슨 전략’ 전략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0년대에 중소 갈등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중국과 관계를 개선했던 것처럼 이제는 미국이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 끌어들이려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미국은 러시아가 중국의 영구적인 종속 파트너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를 거부하면서 이런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 전쟁으로 커진 中 대러 영향력…“러시아도 자신 위치 알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산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러시아에는 자동차, 중장비, 섬유, 심지어 닭가슴살까지 더 저렴하고 품질도 더 좋은 제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푸틴은 KGB 시절 동료이자 러시아 최대 방산기업 회장인 세르게이 체메조프의 압력으로 중국산 자동차 가격을 인상했다.
러시아는 중국 정부 중견 관료들의 간첩 행위 시도를 점점 더 많이 적발하고 있지만 양국 관계 악화를 우려해 공개하거나 이의 제기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 엘리나 리바코바는 “러시아는 양국 관계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중국은 러시아 무역의 약 10%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거의 40%에 달한다. 러시아는 중국 전체 무역량의 4% 미만이다.
◆ 가스관 건설을 둘러싼 중-러의 입장 차이
소식통들은 중국이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힘 2’ 건설 계약을 결코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계에는 가스가 충분하고 중국의 수입 가스 소비량은 203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워싱턴에 본사를 둔 DGA 그룹의 파트너인 우트케는 “5~6년이나 걸리는 파이프라인 건설에 투자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으로 이란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신뢰성을 재고할 이유가 생겼음에도 중국은 서두르지 않고 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완전히 궁지에 몰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유리한 조건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시베리아의 힘 1’ 가스관 협상도 2014년 5월 최종 합의할 때까지 15년이 걸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의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중국과의 오랜 가격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중국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가스를 구입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 경제를 넘어서는 중국의 영향력
중국의 영향력은 에너지 분야를 넘어선다.
시 주석은 지난 1년 동안 푸틴 대통령에게 강요해 상하이협력개발은행(SCODB)의 기축 통화로 위안화를 채택하는 데 동의하게 했다고 WSJ은 전했다.
러시아는 자국 앞마당인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 10년 넘게 저항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금융 고립으로 재고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전쟁 이후 러시아는 베이징에 본부를 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과 브릭스(BRICS) 산하 상하이 소재 금융기관인 신개발은행(NDB)으로부터도 자금 지원을 중단당했다는 것이다.
상하이협력기구(SCO) 조직위원회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8월 SCODB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회원국들로부터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들을 중앙아시아 패권 장악을 노리는 중국에 더욱 가깝게 만들 것이라고 WSJ은 전망했다.
◆ “우월한 지위 남용, 양국 관계에 악영향”
중국과 러시아 관계의 역사는 우월한 쪽이 지나치게 권력을 남용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례라고 WSJ는 전했다.
마오쩌둥이 1950년 중소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소련의 선전 포스터에는 스탈린이 마오쩌둥보다 약간 더 큰 것으로 묘사됐다.
누가 형인지를 강조하기 위한 치밀한 신호였으나 실제로는 마오가 스탈린보다 최소 10cm는 더 컸다.
이러한 소련의 지배욕이 1960년대 중소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고 균열을 복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미국에게는 막대한 전략적 이점을 안겨주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체면을 유지할 여지를 주고, 겉으로는 동등한 모습을 유지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 유리하게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 북러 밀착이 중국에는 새로운 변수
중러 관계에서 북한 변수가 등장해 시 주석은 약화된 파트너를 관리하는 것이 예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
중국은 북러간 군사적 연계가 심화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는 등 군사적 밀착은 는 북한을 자국 영향권 내에 두어 온 중국 관리들을 불안하게 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기술 이전이 북한의 핵무기 또는 잠수함 능력을 향상시키고 한국과 일본을 미국에 더욱 가깝게 만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미국간 갈등을 이용해 한국을 중국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정면으로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선거에서 다시 당선된 후 푸틴의 첫 해외 순방은 베이징 방문 후 곧바로 평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측은 두 방문지 사이에 거리를 두도록 요청했다.
푸틴이 중국과 북한을 연이어 방문하는 것은 중국이 피하고자 하는 ‘권위주의 축’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푸틴은 결국 베트남으로 경로를 변경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푸틴은 러시아, 중국, 북한간 3자 정상회담을 비공개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중국이 거절했다.
◆ 시 주석의 7년만의 방북, 후원국 재확인 시도…“북한 핵은 더 이상 문제 안삼아”
시 주석이 7년 만에 6월 초 평양을 방문한 것은 중국이 여전히 북한의 주요 후원국임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라고 분석가들은 해석했다.
중국은 대신 중국의 지원을 받기 전에 비핵화를 약속해야 한다는 오랜 요구를 보류했다.
스팀슨 센터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윤선은 “원칙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여전히 장기적인 목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단기적으로 중국은 더 이상 북한과의 모든 관계에서 비핵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네기센터 가부예프 소장은 “중국은 러시아를 덩치 큰 라오스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중국에 훨씬 더 의존적이고, 중국과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중국을 모델이자 근대화의 원천으로 훨씬 더 우러러보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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