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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오르다가 꺼낸 '초경량 세트', 피로가 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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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오르다가 꺼낸 '초경량 세트', 피로가 녹습니다

요즘 매일 산에 갑니다. 전문 산악인이나 등산 애호가들에게 제가 매일 오르는 북한산 자락은 그저 가벼운 산책 코스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아직 덜 깬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제 마음만은, 흡사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는 산악인의 마음입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험준하고 가파른 '단발령(斷髮嶺)'을 넘을 때의 비장함과 맞먹는다고나 할까요.

단발령.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고개는 강원도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한 험지입니다. 고개를 넘는 사람마다 눈앞에 촤라락 펼쳐진 금강산의 황홀한 진면목을 바라보게 되면, 누구라도 당장 머리를 깎고(斷髮) 중이 되어 이 아름다운 산속으로, 저 아득한 선계(仙界)로 떠나고 싶어 진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죠. 이 극적인 감동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해 낸 이가 있으니, 바로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입니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산도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岳圖帖)> 가운데 <단발령망금강산도(斷髮嶺望金剛山圖)>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화첩은 1711년 신묘년, 서른여섯 살의 정선이 백석 신태동과 함께 처음으로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초기작입니다.

정선은 여행길에서 당시 김화현감이었던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 일행과도 만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산천을 직접 마주하고 그 생생한 인상을 화폭에 옮긴 이 작품에는, 후일 겸재식 진경산수화로 무르익을 독자적인 구도와 화법의 초기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림의 구도는 파격적일 만큼 극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정선 일행이 서 있는 단발령은 쌀알 모양의 먹점을 촘촘히 겹쳐 찍는 미점준(米點皴)으로 어둡고 묵직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 넓은 운무의 여백 너머로 신기루처럼 솟아오른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날카롭게 내리긋는 수직의 필선과 밝게 처리된 암봉으로 눈부시게 빛납니다. 어둡고 무거운 세속의 문턱인 단발령과 밝고 신비로운 금강산의 대비는 마치 현실에서 이상향을 처음 마주한 순간처럼 읽힙니다.

1711년, 서른여섯 살의 정선이 처음 금강산과 대면했을 때 느꼈을 경이로움이 붓끝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고개 중턱에는 험한 산길을 오르느라 타고 온 가마에서 내려, 넋을 잃고 금강산의 장관을 바라보는 정선과 백석공 일행이 점경인물로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북한산을 오르다, 마침내 시야가 탁 트이며 웅장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전망대 데크에 다다를 때면 단발령에 선 옛 선비들의 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산 아래 빌딩 숲에서 묻혀온 속세의 얄팍한 근심들이, 저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낱 먼지처럼 가벼워지니까요. 그리고 이 완벽한 진경(眞景) 앞에서 땀을 식히노라면, 어김없이 간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맑게 우려낸 향긋한 차 한 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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