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 지지했던 무소속 의원들... 불안했던 대통령이 한 일

ONP 요약
더불어민주당의 다음 지도자를 뽑는 당내 선거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이 유명한 정치인인 이해찬 전 총리의 아내분을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줄 후원회장으로 모셨습니다. 정청래 의원은 '이해찬 총리가 했던 검찰개혁 사업을 이어서 하고, 민주당을 더욱 개혁적인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소속 출마자들에 대해 유권자들이 떠올리는 인상들이 있다. 자기 이름과 능력을 걸고 심판받는다, 당리당략으로부터 자유롭다 등등의 시선도 있다. 반면, 공천 탈락자들이 많다, 당선 뒤 어디론가 들어갈 수도 있다, 행정당국에 대한 영향력이 약하다, 정치권의 주류는 아니다 등등의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 정치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대결 구도는 민주당 대 자유당(이승만 집권기), 신민당 대 민주공화당(박정희), 신한민주당 대 민주정의당(전두환), 신민주연합당·민주당 대 민주자유당(노태우·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 대 신한국당(김영삼),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당 대 한나라당(김대중·노무현·이명박),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대 새누리당(박근혜),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문재인) 등이다.
이처럼 한국 정치는 주로 당 대 당의 구도로 기억되지만, 이것이 어느 시기에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무소속이 의회정치를 주도했던 6년간도 있었다. 제1대 총선이 열린 1948년 5월 10일부터 제3대 총선이 있은 1954년 5월 20일까지는 무소속 국회의원이 가장 많았다.
이승만을 견제한 무소속 의원들
1948년에 제정된 헌법은 5·10 총선 당선자의 임기를 2년으로 한정했다. 이로써 그해에 선출된 4년제 대통령 임기와 겹치지 않게 됐다. 이로 인해 1950년 5월 30일에 제2대 총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1대·2대 국회의 임기는 총 6년이다.
200명을 선출하는 제1대 때는 무소속 당선자가 85명이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고, 29석을 차지한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그 뒤를 이었다.
210명을 뽑는 2대 때는 무소속이 126명으로 늘어났다. 한민당이 친이승만 정당인 대한국민당의 주류세력을 흡수해 만든 민주국민당이 24석을 차지했다. 대한국민당 잔존세력은 이 당의 명의로 24석을 획득해 공동 1위가 됐다.
203석이 걸린 3대 총선에서 자유당이 114석을 차지하기 전까지의 6년간은 무소속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의 무소속 상당수는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구락부(그룹) 같은 것을 결성해 집단적으로 활동했다. 느슨한 의원 모임 형태였던 그 6년간의 구락부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무소속구락부(조소앙 등), 동성회(김약수), 공화구락부(오위영), 공화민정회, 호헌동지회 등이다.
1대 총선의 3위는 독립운동가 지청천이 만든 대동청년단이다. 이 단체는 12석을 차지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같은 사회단체가 각각 1위 및 3위를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현대적인 정당 정치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이는 두 선거에서 무소속이 약진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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