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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황두연... 76년 만에 복원된 탄원서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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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황두연... 76년 만에 복원된 탄원서의 증언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공산주의자로 몰려 즉결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황두연 전 국회의원(1905~1984)이 이듬해인 1949년 9월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가 복원됐다. 이 문서는 물에 젖어 글씨가 번지고 변색해 판독이 어려웠으나 화질 개선과 AI 판독 등을 거치면서 그동안 식별되지 않았던 내용이 상당 부분 확인됐다.

복원된 탄원서에는 여순사건의 혼란 상황을 이용해 황두연 의원과 박찬길 검사(1910~1948)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하려 했던 인물들과 그 배경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특히 황 의원은 1948년 5·10 총선에서 자신에게 패배한 경쟁 세력과 일부 우익 인사들이 허위 정보를 조작해 자신을 '인민재판 배석판사'로 몰았다고 주장하며 관련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순천 기독교계와 우익 진영의 지도자

황두연은 전남 여수 돌산군 남면 우학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고흥 금산면(거금도)으로 이주했다. 이후 고흥과 순천을 중심으로 교육·종교·행정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기독교 계통학교인 전주 신흥학교를 졸업한 뒤 고흥 금산 영천학원 교장을 5년간 지냈고, 이후 순천 안력산병원에서 10년 동안 회계 업무와 서무 과장직을 맡았다. 1929년 말부터는 순천읍교회(현 순천중앙교회)에 출석하여 1940년 5월에는 장로로 임직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9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위한 원탁회 활동 혐의로 체포돼 약 4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순천중앙교회 장로로 복귀했지만 안력산병원이 폐쇄되면서 새로운 활동 무대를 찾았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순천지부장을 맡아 반탁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노총과 대한독립농민총연맹(대한농총)에서 활동하며 전라도 대의원과 순천군연맹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 미군정 시기에는 군정청의 임명으로 순천 부읍장과 읍장 직무대행을 거쳐 읍장을 맡았고, 이후 미 공보원 강사로도 활동했다. 당시 황두연은 순천지역 기독교계와 우익 진영을 기반으로 순천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시 순천지역은 호남선교 본부가 있던 곳이라 기독교세가 강했다.

1948년 제헌국회 선거를 앞두고 황두연은 미 공보원 강사직을 사임한 뒤 대한농총과 독촉국민회의 추천을 받아 순천갑구에 출마했다.

그의 상대는 한민당 후보 김양수(1896~1971)였다. 김양수는 순천 지역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였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논설위원, 기업인 등으로 활동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광복을 맞았다. 그 역시 순천읍교회에 출석하며 순천지역 면려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기독교계에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출신과 학력, 경제력, 선거 자금력 등을 감안하면 황두연의 열세가 예상됐다. 더욱이 김양수 측은 황두연의 핵심 지지층인 기독교계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순천중앙교회 출신 박옥신 후보(애국부인회)를 출마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황두연은 1만4677표를 얻어 1만1508표에 그친 김양수를 3169표 차로 크게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지역사회에 팽배했던 한민당과 지주 세력에 대한 반감이 승패를 갈랐던 것으로 평가된다.

여순사건과 죽음의 문턱

그러나 선거 과정의 앙금은 여순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제거를 위한 정치 테러로 이어졌다. 황 의원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의 부탁으로 정부의 미곡 매입을 지원하기 위해 1948년 10월 19일 순천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봉기군이 순천에 진입하자 그는 구례인(크레인) 선교사의 집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는 김규당 목사와 김상권 목사 등이 함께 있었고, 이들은 3층 물치장에 짐짝으로 위장한 채 숨어 있었다. 토벌군이 순천을 탈환한 뒤 황 의원은 구례인 선교사의 차량을 타고 시내를 둘러보다 북국민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심하게 구타당해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의 박찬길 검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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