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내 문학의 출발점"…윤흥길의 기억 속 '이리역 폭격'
"나의 6.25는, 아니, 우리의 6.25는 사실상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시작됐다"
한국 분단 문학의 거장 윤흥길의 연작소설 중 는 하인철의 독백으로 문을 연다.
1950년 7월 11일, 아홉 살 소년 윤흥길의 머리 위로 지나간 미군 B-29폭격기가 이리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50여 년이 지나 회갑에 이른 윤흥길은 아직도 눈에 선명한 그날의 참상을 '하인철'이란 어린아이의 시선을 빌려 세상에 꺼냈다.
전쟁의 민낯을 마주했던 그날로부터 76년. 한국 문학의 거장이 된 그는 "이리역 폭격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다"고 고백했다.
9살 동심이 목격한 폭격…참혹한 전쟁의 얼굴을 마주하다
'이리역 폭격 사건'이란 1950년 7월 11일 오후 2시 30분쯤 미 극동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2대가 전라북도 이리시 철인동 이리역과 평화동 변전소, 목천동 만경강 철교 등에 폭탄을 투하하고 사격해 이리역 철도 근무자와 인근 거주민 등 91명 이상을 사망케 한 일을 말한다.
지난 8일, CBS노컷뉴스와 만난 윤흥길 작가는 "이리역 폭격은 문학을 하는 내내 마음속에 화인이 찍힌 것처럼 남아 아우성치고 있던 사건이다"며 "언젠간 써야 한다 생각해왔던 사건을 환갑이 돼서야 세상에 내놨다"고 말했다.
폭격 당시 이리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60여 년이 지난 그날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청소에 쓸 물을 바케스(바구니)에 길어 학교로 향하는데 비행기 소리가 들려 '히꼬끼(비행기의 일본어)다. 히꼬끼'를 외치면서 환영을 하는데 비행기에서 파리똥 같은 점들이 막 쏟아졌다"며 "점 같아 보이던 것들이 점점 커지더니 한 순간 땅이 진동하고 건물 유리창이 소리를 지르기에 봤더니 폭탄이었다"고 말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전쟁의 발걸음이 아직 미치지 못했던 이리,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아홉 살 윤흥길은 그날 폭격으로 부서진 이리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참혹한 전쟁의 얼굴을 최초로 마주한다.
윤 작가는 "동네 형과 함께 부서진 이리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철근에 몸이 뚫린 채 매달려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며 "인생 최초로 처참한 시체의 몰골을 목격한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폭격으로 몸이 뚫린 시체, 동심(童心)의 세계에서만 살아왔던 윤흥길에게 이날의 충격은 사회적 자아를 눈뜨게 하는 최초의 계기가 된다.
그는 "이리역 폭격 이후 이리에서 경험한 전쟁의 상처들이 '소라단 가는 길' 등 작품의 소재가 됐다"며 "소설을 시작한 후 내가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바깥세상을 향해 방출해왔다"고 밝혔다.
"역사의 폭탄" 문학으로 기록한 분단의 아픔과 슬픔
윤흥길 작가에게 '이리역 폭격'은 단순히 시골 지역에 실수로 폭탄이 떨어진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 경쟁의 한복판 속 한반도에 '역사의 폭탄'이 떨어진 사건이다. 그는 "한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 일본의 지배부터 한국전쟁까지 수많은 역사의 폭격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윤 작가의 인식은 전쟁의 참상과 갈등, 화해를 다루는 분단 문학이라는 그의 작품세계와 연관된다.
'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멧돼지'가 수록된 '소라단 가는 길'이나 '장마' 등 그의 대표작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 이데올로기 경쟁의 대리전을 겪게 된 남한과 북한은 모두 피해자라는 인식 속에서 탄생했다.
'소라단 가는 길'에선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 연좌제, 관제 데모, 미군 범죄, 빨치산 등 전쟁의 상흔을 기술했고, '장마'에선 한 집안에 같이 살면서 각 아들을 인민군과 국군으로 보낸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이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어린 손자의 시점에서 기록했다.
윤 작가는 "한반도에 떨어진 역사의 폭탄으로 한민족은 많은 아픔을 겪어왔다. 인민군 점령하의 수원을 폭격하려던 미군기가 이리를 수원으로 오인해 폭격한 이리역 사건도 그 맥락 속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의 정치와 행정은 우방인 미국 앞에서 침묵하지만 문학은 냉정한 시선을 바탕으로 역사가 침묵하는 사실을 과감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리역 폭격을 소설로 남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역사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에 더해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자들의 아픔과 슬픔, 분함과 억울함을 기록해 위로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며 "그 시대를 알지 못하는 자들도 기록을 통해 아픔에 공감할 수 있기에 소설로 남기고자 했다"고 밝혔다.
76년째 멈춰 선 진상 규명…피해자 위로 재개해야
"역사가 침묵하는 사실을 과감히 다뤄야 한다"는 윤 작가의 말은 이리역 폭격이 76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피해자 위로와 진상규명이다.
앞서 지난 2010년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이리역 폭격을 '미군의 오폭'으로 규정했다.
당시 진화위는 진상 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과의 협상 △국가 사과와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부상 피해자 의료 지원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기록 정정 △역사 기록의 수정 및 등재 △외교적 노력 및 인권의식 강화 등의 내용을 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제적부 및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기록 정정 외에 미국과의 협상과 국가 차원의 사과 등 진실 규명과 억울함 해소를 위한 권고사항은 이행되지 않았다.
또한 1950년 7월 11일 당시 폭격이 오폭이 아닌 의도적인 '작전상 폭격'일 가능성을 두고서도 진상 규명 작업이 필요하다. 진화위도 '오인 폭격'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당시 미 공군의 작전 일지의 부재를 근거로 미군의 작전에 따른 폭격이었을 가능성도 암시했다.
희생자 위령제 등 추모사업 지원도 없었다. 시민단체 중심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위령제가 몇 차례 열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2008년 이후부터는 전무했다.
윤 작가는 "이리역 폭격은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사건이다"며 "정치와 행정은 위령제 등을 열어 피해자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작전상 폭격일 수도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지금껏 실수로 폭격했다는 말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는데 작전상 폭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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