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도 없는데 또 강제집행"... 정릉골 세입자들이 인권위에 '진정' 낸 이유

"길을 만들어 주세요. 지금 우리에게는 갈 길이 없습니다."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앞. 정릉골 주거세입자대책위원회 김우권 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최근 재개발조합의 강제집행 시도를 떠올리며 "언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릉골 세입자대책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성북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거세입자 대책 마련 전까지 강제집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공대위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정릉골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와 강제집행 실태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릉골의 역사는 서울 개발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청계천 복개사업과 도심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북한산 자락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 바로 정릉골이다. 사람이 먼저 들어와 살고 길이 뒤따라 만들어졌다는 이 마을은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이뤄온 공간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을 단순한 주택 정비사업이 아니라, 개발로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개발로 밀려나는 '두 번째 축출'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책 없이 떠나라는 재개발"
공대위에 따르면 정릉골 재개발 사업은 임대주택 없이 최고 4층 규모의 주거단지 조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사업 대상은 토지 소유자와 세입자를 포함해 1218세대에 달한다.
공대위는 재개발 과정에서 원주민 재정착 대책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강제 이주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북구청은 2024년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했고 이후 명도소송과 이주 절차가 진행됐다. 공대위가 인용한 조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92.8%가 이주를 완료했지만 여전히 88세대가 현장에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주거세입자는 21세대다.
공대위는 "해당자와 미해당자로 세입자를 구분해 일부 주민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알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우권 위원장은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와중에도 강제집행은 강행됐다"며 "혼자 집에 있는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고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간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성북구와 서울시는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 정릉골 주민들에게는 갈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공대위는 최근 진행된 강제집행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지난 8일 재개발조합은 주차장 부지를 시작으로 물리적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강제철거 예방 대책에 명시된 사전보고와 현장 입회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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