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설 속 '더센 삼촌', 신채호와 연대한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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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성수산 생태공원 편백 숲속의 나무 의자는 독서하기 좋은 호젓한 서재가 되어주었다. 피톤치드 가득한 초록빛 그늘 아래서 들추어 보던 책장 너머로, 키 큰 나무 그늘 아래 작은 꽃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친 풀숲 사이, 굽이진 줄기 끝에 하얀 꽃망울을 터뜨린 꽃은 큰까치수염이었다. 척박한 토양과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피어났다. 이 야생화가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와 대만 객가인 출신인 린빙원(林炳文, 1905~1928)의 단단한 연대처럼, 읽고 있는 책장 사이에 겹쳐왔다.
신채호와 린빙원은 100여 년 전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절 국경을 넘어 독립의 희망을 함께 피워내고자 했다. 두 사람의 만남과 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 국경의 경계를 허물었다.
1920년대 후반,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의 해방을 넘어 인간 고유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력과 식민 체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이 시기 신채호는 아시아 각국의 혁명가들과 손을 잡고 국제적인 연대 활동을 모색했는데, 그 중심에서 불꽃 같은 삶을 함께한 인물이 대만 출신의 청년 혁명가 린빙원이었다.
그들은 동아시아 청년들이 연대하는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을 결성하고, 대만의 총독부 폭파와 아나키즘 선전 잡지 발행, 그리고 비밀 폭탄 제조 공장 건립을 위한 대담한 활동 자금 조달 작전인 '외환(외국환어음) 위폐 사건'을 함께 도모하게 된다.
린빙원은 대만의 '객가인(客家人)' 출신이었다. 외부의 억압에 맞서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집단 주거 문화 '토루(土樓)', 그리고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으며 공동체를 지켰던 '경독전가(耕讀傳家)'라는 객가인 특유의 강인한 문화적 유산은, 린빙원이 국경을 넘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조력하고 연대할 수 있었던 사상적 뿌리가 되어주었다.
신채호와 린빙원이 지향했던 동양의 아나키즘은 '근로와 노동에 기반한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했다. 이는 객가인들의 경독전가 정신 중 '경(耕)'과 깊이 맞닿아 있다. 객가인들에게 농사(耕)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땀 흘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자립과 자치의 상징이었다.
신채호 선생이 선언한 〈조선혁명선언〉이나 말년의 아나키즘 저작들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낸 자리에 "민중이 직접 생산하고 민중이 직접 지배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린빙원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가였다. 역사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던 린빙원의 흔적은 그의 조카인 대만의 여류 작가 린하이인(林海音, 1918~2001)의 자전적 소설 <성남구사(城南舊事)>에서 문학적 서사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린하이인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1923년 부모를 따라 중국 베이징의 성남(城南)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1948년 대만으로 이주한 린하이인은 베이징의 골목길(후퉁) 성벽 아래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어린 소녀 '잉쯔(英子)'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린 연작 소설 <성남구사>를 1960년 대만에서 발표했다.
린하이인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가족의 비극과 유년의 상실이라는 렌즈를 통해, 삼촌 린빙원의 혁명가적 면모와 그로 인해 몰아친 집안의 풍파를 은유적으로 형상화했다. 소설 속 '란이냥' 편에 등장하는 청년 대학생 '더센(德先)'은 삼촌 린빙원을 모델로 했을 개연성이 높다.
더센은 관청의 삼엄한 감시와 체포 위협을 피해 주인공 잉쯔의 집에 잠시 숨어 지내는 대학생이자 혁명가였다. 잉쯔의 어머니가 "저렇게 혁명 운동을 하는 사람을 집에 두었다가 온 가족이 사형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남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당시 린빙원의 위험한 혁명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숨죽여야 했던 실제 작가 가족들의 긴장감이 반영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 포착된 삼촌의 모습은, 당시 베이징 대학가와 혁명 전선을 오가며 고뇌하던 청년 린빙원의 초상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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