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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적인 남편, 경멸하는 아내... 카프리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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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적인 남편, 경멸하는 아내... 카프리섬의 비극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폴'은 아내 '카미유'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에 도착한다. 미국 영화 제작자 '제리'가 각본 수정을 위해 초빙한 것.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통역을 맡은 '프란체스카'가 맞는다. 그곳에서 이들은 감독 '프리츠 랑'과 인사를 나눈다. 그의 신작 <오디세이>가 바로 폴이 손볼 작품이다. 거장과의 만남에 들뜬 폴과 달리 제작 방향에서 대립을 겪던 제리와 감독 사이는 싸늘하기만 하다.

제작에 난항을 겪는 데다가 원래 주변 사람들에 안하무인인 제리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대작 영화 각본가로서 받을 금액을 포기할 수 없는 폴은 최대한 그에게 맞춰주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모가 출중한 아내를 '선물'처럼 제작자와 시간을 보내게 하는 바람에 부부 사이는 불편해진다. 다툼을 거듭하면서도 부부는 카프리섬 휴가를 함께 하자는 초대에 응한다. 지중해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둘의 관계는 점점 더 냉랭하다.

체면과 허위의식이 불러온 경멸과 파국

시작부터 부부의 관능적인 순간이 묘사된다. 꽤 나이 차이 있는 폴과 카미유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서로에게 매력과 신뢰를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들어온 큰 건에 기대감을 품고 기꺼이 장거리 여행을 감행한다. 거대한 스튜디오에 도착해 경탄도 잠시, 촬영 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은 곧 체감된다. 일을 의뢰한 제작자는 감독과 마찰을 빚는 중이라 신경은 곤두서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카미유의 미모를 굳이 언급하는 것도 괴이쩍다.

제리는 의도적으로 부부를 떼어놓고 무례하게 상대의 아내와 자신이 드라이브할 테니 남편은 따로 택시를 타고 오라 통보한다. 카미유는 당연히 폴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거라 믿었지만, 남편은 어째 순순히 동의한다. 게다가 뒤따르던 폴은 사정이 생겼다며 한참 늦게서야 도착하는 통에 카미유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근하던 부부 사이엔 의심이 싹튼다. 아내는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고용주에게 잘 보이려 자신을 '선물'로 제공한 기분이다.

한 번 벌어진 간격은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다. 첫 만남 이후 숙소로 돌아간 부부는 냉전을 개시한다. 카미유는 별안간 각방을 쓰겠다 하고, 폴은 아내의 돌변에 혼란스럽다. 자상하게 보듬으려 하지만 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내가 누구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맡기로 했는데!'라며 상대에게 결정을 떠넘긴다. 이건 나라별 차이를 떠나 서먹한 상황에 절대 해선 안 될 언행이다. 하지만 폴의 대처는 모호하고 아내 못지 않게 충동적이기만 하다.

그래도 파국은 원치 않던 둘은 어떻게든 봉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번번이 툭 터지는 갈등은 도무지 수습 기미가 없다. 자꾸만 번지수 헛짚는 폴에게 염증이 난 카미유는 급기야 남편을 '경멸'하는 지경에 이른다. 남편은 필사적으로 파국을 막으려 해도 여전히 아내 입장에서 공감 능력은 보여주지 못한다. 카미유가 왜 자신이 그에게 실망한 건지 은유적으로 암시해도 폴은 늘 결정적 해결 기회에 엇박자를 낸다. 큰 기회를 놓치기 싫은 '속물' 면모가 발목을 잡는다.

폴은 아내가 원하는 게 어떤 태도인지 알면서도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속물성을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그는 젊은 아내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며 통큰 척하지만, 상대는 단번에 그의 핑계 만들기 의도를 포착한다. 연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고용주에게 맞서 단호히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를 바랬던 카미유 입장에선 남편의 기회주의적 면모는 경멸의 대상, 염증을 돋울 뿐이다.

수표책과 예술가 사이에서 표류하는 군상

부부의 예정된 파국은 단순 치정극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로 기반을 잡고 싶지만, 집필하고픈 희곡에 전념하지 못한 채 영화 각본 땜질하는 신세인 폴이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우월감을 과시하다가도, 은연중에 그녀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60여 년 전 과거를 배경으로 삼긴 해도 그가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권위적 가부장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열등감이 치밀면 폭력성이 불쑥 터지고, 고상한 척 지식인의 이면엔 성적 욕망과 대상화가 숨어 있다.

부와 위계 권력을 거머쥔 제리가 대놓고 카미유를 유혹하는 것과 달리 폴은 고용주에게 학대받은 비서를 위로하는 척 접근하거나 아내의 육체를 노골적으로 탐한다. 그러나 번번이 속물적 욕구는 거부당하거나 쉽게 들키고 만다. 열세를 만회하고자 애처롭게 양보하는 듯해도 조금만 상황이 수습되면 이내 버릇이 돌아온다. 그때마다 카미유는 있던 정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자기연민에만 충실한 폴은 연인을 올바르게 존중하지 못한 채 합리화에만 급급한다.

그렇게 남에겐 밝힐 수 없는 벼랑으로 몰리면서도 맡은 일은 수행해야 한다. 존경하는 거장 감독과 수표책을 손에 쥔 제작자 사이에서 난감한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심정적으론 감독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아내와 단란하게 지낼 새 집 대출금은 벌어야 한다. 아내를 붙잡기 위해서다. 정작 상대방은 '뭐가 중헌디?' 상태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카미유가 점점 흉중의 일관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반면, 폴의 태도는 갈팡질팡한다. 그의 실존적 처지가 갖는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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