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장서 29년 일한 '만능 노동자'... 이 사람이 '불법'이라고?

정부는 올해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발표를 예고하며, 향후 한국 사회 이민정책의 방향을 이끌 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 전환 논의에서 배제된 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민(체류 자격 없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로, 지역주민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민정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직 체류관리를 위한 숫자로만 정부 문서에 등장할 뿐이다.
지난 3월에 발표된 법무부의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아래 전략)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뚜렷하다. '전략'은 미등록 이주민의 숫자에 대해 "36.8만 명에서 20만 명 목표까지 도달하는데 약 9년 소요('34년) 예상"이라든가, "단속반원 1인당 1000명"과 같은 표현에서 보듯 이들을 단속과 추방의 대상으로만 언급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이주민 유입이 본격화된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일관된 접근이다. 단속과 추방 정책은 미등록 이주민들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며 이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고통 그리고 죽음도 경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실재하는 삶을 보지 않는다. 미등록 이주민의 존재, 이들의 삶을 마주할 때, 숫자가 아닌 사람의 권리에 기반한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모색할 수 있다.
이주민 8명 중 1명이 미등록 상태
'미등록'은 특정 시점에서 본 한 사람의 이주 상태이며, 법과 정책의 변화에 따라 미등록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즉, 고정불변의 정체성이 아니라 제도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상태'다. 2026년 5월말 기준 한국의 미등록 이주민은 34만 7천 6명으로 전체 이주민 287만 191명 중 12.1%이며, 대략 이주민 8명 중 1명이 미등록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식 통계로 확인되지 않는 이주민을 포함한다면 이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법무부가 "세종시 인구보다 많은 규모"라고 지적했듯이, 이 정도 규모의 이주민이 미등록 상태라는 사실은 한국의 노동시장과 이주 제도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층으로 분절화된 한국의 노동시장은 가장 열악한 밑바닥 노동을 미등록 이주민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선주민(먼저 정착한 내국인)이 기피하는 제조업 하청, 농업, 건설, 돌봄 등의 일자리를 주로 이주민이 채우는데, 등록 이주노동자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하다. 그 안에서도 더 불안정하고, 열악하고, 위험한 일자리를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채우는 구조로 노동시장이 작동한다. 비용을 절감하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업주에게 이들은 가장 저렴하고 순종적이며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행 중인 노동이주 제도인 '고용허가제'(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업주와 이주노동자를 매칭해 주는 노동허가 제도) 역시 구조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양산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나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떠날 수 없다. 사업주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사업장 이동 시 일정 기간(통상 3개월) 안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미등록 상태가 된다. 또한 최대 4년 10개월로 제한된 체류기간도 마찬가지다. 기간이 끝나 본국으로 귀국하면 재입국을 장담할 수 없다는 두려움 탓에 체류연장을 선택하게 되고, 그 순간 미등록 신분이 된다. 실제로 현재 미등록 이주민 중 가장 많은 수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이주노동제도의 모순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지속적으로 양산했음에도, 정부는 필요할 때는 한시적 합법화와 묵인으로 노동력을 활용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단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런 자의적 방침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팬데믹으로 새로운 노동력의 유입이 불가능해지고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단속을 멈췄다. 당시 미등록 이주민의 비율은 2020년 19.3%, 2021년 19.9%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끝나고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자 2023년에 정부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대규모 단속·추방에 나섰다. 팬데믹 시기 산업현장의 '필수 노동자'였던 이들은 팬데믹이 끝나자 단속과 추방이라는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실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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