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문제적인 계엄 영화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 젊은 부부가 있다. 남편은 몽골 역사 연구자다. 둘은 친구처럼 대화하며 지낸다. 남자의 생일에 아내는 소박해도 정성을 기울인 밥상을 차리고 바쁘게 외출한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소일하던 남편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당황한 그는 급히 출타한다.
남자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갑자기 목소리를 잃고 말을 할 수도 없다. 가족을 잃은 불행에 천직조차 이어가기 힘들다. 12.3 계엄의 밤 발생한 반려와의 이별 이후 남자의 일상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목소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12.3 계엄을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풀이하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은 수치로 계측하기 힘들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시는 벌어질 일 없다던 쿠데타 시도가 21세기 한복판에서 공공연히 벌어진 탓이다. '일찍 자고 일어나니 다 지나간 일'이 아니란 것. 상당 기간 적지 않은 이들이 정신적 충격에 혼란함을 토로했다. 그 후유증은 현재 이어지는 극심한 사회 갈등, 정신적 내전 상태로 고스란히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문화예술은 시대의 불안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시작된 계엄 시도와 이후 과정을 다룬 영화는 국내 영화제에서 쏟아지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 형식 장편영화도 등장했다. <검은 여름>을 선보였던 이원영 감독의 신작 <미명>이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하려 한다. 기록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할 만하다. 그런 기대에 영화는 아주 기이한 방법론으로 보답한다.
영화는 12.3 계엄 전후의 어수선하고 혼란하기 그지없던 사회 분위기를 농축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체험했고 공유하는 객관적 'fact' 체크가 작품의 목적은 아니다. 그건 이미 다 알고 있으며 다큐멘터리의 몫이라 판단했기 때문. 극영화가 차별화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대안적 형태의 창작은 어떻게 가능할지 모색이 도파민 중독과 극도의 상시적 불안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널뛰는 작금 한국인의 심정 묘사를 향해 폭주한다.
개인의 비극과 세상의 붕괴가 연결되는 방식
젊은 부부는 혼란한 세상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며 작은 섬처럼 존재해 왔다. 기성세대 방식 표현대로라면 '금슬 있는 부부'의 전형이라 해도 좋겠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함께 하기에 꿈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혼돈으로 치달을 때, 서로 의지하던 부부에겐 돌이킬 수 없는 부재 상황이 덩달아 터진다. 이는 회복할 수 없는 영구적 피해다. 극단적인 돌발 사태에 남자는 아무런 대응도 가능하지 않다.
제작진은 여기에서 비범한, 혹은 과잉의 도전의식을 발휘한다. 작중 남편의 처지는 그야말로 비극적 신파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세상은 암흑으로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건만, 유일한 등불이자 위안이던 사랑하는 이를 손 써볼 틈도 없이 영영 잃고 말았다. 아무리 가까운 이라도 온전히 공감하기도, 이해하기도 불가능한 그들만의 비극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듯, 그의 심장은 갈가리 찢기고 삶에 아무 의지를 찾을 수 없으리란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극한 정서를 감독은 시대의 불안과 절묘하게 버무리고자 도전한다. 영화 속 극단적 상황은 가로와 세로,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듯 이중의 구조로 엄습한다. 한쪽에는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계엄 사태 이후 흉흉한 혼란상이 자리한다. 다른 쪽에는 벼랑 끝에 선 한 남자의 지독한 우울과 불안이 도사린다. 이 공적/사적 통틀어 희망이란 찾을 길 없는 황폐한 풍경을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추상화로 구현할 것인가가 작가적 야심을 거쳐 구현된다.
시각 이미지와 문학적 서사에서 '소리'의 울림으로 중심이동
영화는 도입부부터 의외성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주인공 부부는 남편의 동생 부부와 식사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다. 그들의 간격 없는 대화는 친밀감을 상징한다. 대개 본격적으로 영화가 출발하며 등장인물들을 관객이 식별할 수 있도록 조감도를 눈앞에 가득 펼치는 게 정석이건만, 어째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더 청각에 의지해 인물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평범해 보여도 삶의 고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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