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에 정떨어진 날, 퀴어인 내가 태국에서 한 짜릿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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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케이팝 고인물로서의 쓴소리를 이어오며 애증을 드러냈다. 현재 케이팝을 향한 사랑은 예전에 비해 많이 사그라 들었다. 물론 지금도 스포티파이 앱을 켜면 '우먼 오브 케이팝 Women of K-pop' 플레이리스트부터 확인하고, 최근 화제 된 아이돌 리센느의 "거제 야호"를 흐뭇하게 바라보지만, 딱 그 정도까지다. 케이팝 여아이돌(여돌)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내 정체성이 퀴어라는 걸 밝힌다. 여돌을 좋아하는 여덕들의 성 정체성은 당연히 다양하다. 다만, 나는 여성에게 끌리는 퀴어다. 이 정체성은 내가 케이팝 여돌을 사랑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동성애자, 퀴어, 성소수자라는 말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금기시됐다. 그 존재에 대한 낙인 역시 강했다. 그러다 보니 당시 내게 여자들로만 이뤄진 '걸그룹'이라는 존재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던 시절, 이들의 존재는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여돌을 사랑하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 중에 내 자리도 있을 거 같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여돌에 입덕하며 케이팝 문화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퀴어 문화와 케이팝
하지만 케이팝신은 퀴어 문화를 대변하거나 흡수한 적이 없다. 오랫동안 퀴어문화의 미학과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했지만, 그 뿐이었다. 퀴어 문화의 사회적 맥락이나 정체성은 철저히 분리해 내는 전형적인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어느 한 문화집단이 다른 문화집단의 전통문화를 자신의 것인 양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 양상을 보여왔다. 케이팝 산업은 퀴어 커뮤니티의 생존과 저항의 역사가 담긴 퀴어문화의 유산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단순히 '트렌디한 콘셉트'로 가공해 활용했다.
춤의 장르 중 하나인 보깅와 왁킹은 1970~80년대 미국 뉴욕과 LA의 흑인 및 라틴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장르다. 당시 가혹했던 사회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춤으로 표현했다. 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는 이 보깅와 왁킹을 안무에 녹였지만, 이 춤에 담긴 성소수자들의 역사나 저항의 의미를 언급한 경우는 드물다. 기획사 역시 이 안무를 단순히 '세련된 해외 트렌드', '하이패션적인 안무', 혹은 '팔 혹은 손을 이용한 고난도 댄스' 정도로만 포장하여 마케팅했다.
케이팝에서 '패션'으로 등장시키는 '젠더리스'(Genderless)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의 성별이분법을 깨는 스타일링과 태도, 젠더 표현으로 '퀴어함'을 드러내려는 퀴어 커뮤니티의 실천이다. 그런데 케이팝에서는 '젠더리스'를 콘셉트 삼아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일 뿐, 그 의미를 살피지는 않는다.
케이팝 팬덤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팬덤은 사실 동성만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과 그들 사이의 친밀성·관계성을 '놀이'로 포장해 즐기곤 한다. 하지만 아이돌 멤버 중에 '퀴어/동성애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말은 용납하지 않는다. 멤버 중 나 같은 사람(퀴어)이 있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하는 팬도 있어 상처 받은 기억이 많다. 그럴 때마다 '퀴어가 뭐 어때서?!'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돌 멤버를 포함해 누구나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의 첫 글자를 딴 약어로 성소수자를 의미)일 수 있지 않나.
결국 팬덤 내에서도 케이팝 신에서도, 나를 포함한 LGBTQ 존재는 존중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이런 모습은, 결국 케이팝 여돌을 향한 사랑의 불씨조차 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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