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는 왜 조사관이 되어야 했는가

저는 조사관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였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평범한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는 수사기록을 읽고, 군의 규정을 찾아보고,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디지털 포렌식 자료를 분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조사관이 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2024년 1월 1일.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UAE 아크부대에 파병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아들,
곽진수 중위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인 저는 처음에 국가를 믿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는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사실을 설명하며, 유족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손에는 설명보다 자료가 하나둘 쌓여 갔습니다. 수사결과보고서, 관계인 진술, 현장감식 기록, 디지털 포렌식 자료, 정보공개 회신, 민원 답변, 규정과 훈령...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습니다.
왜 구조적인 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의 문제만 남게 되었을까
2024년 7월 25일, 아들의 사망은 순직Ⅲ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말없이 떠난 지 7개월이 넘도록 차가운 냉동 안치실에 모신 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아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순직 결정이 내려진 지 이틀 뒤, 그토록 보고 싶어도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아들 진수가 처음으로 제 꿈에 찾아왔습니다.
푸른 잔디밭에 '곽진수'라는 선명한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 진수가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감쌌습니다. 그 순간 손바닥으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어... 따뜻하네."
제 손바닥으로 전해진 그 따뜻함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꿈의 의미를 제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는 그것을 마지막 인사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저는 곧바로 인터넷에 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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