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류장은 행복입니다

차량 2부제에 맞춰 짝숫날만 자차를 이용하였었다. 어느 날부터는 짝수 홀수 헤아리는 것도 귀찮아져 버스만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는지 차량 2부제가 해제된 지금도 여전히 버스로 출퇴근하는 중이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편히 갈 수 있다는 것, 그 고마운 사실을 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체득한 것 같다.
일터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아침 여섯 시쯤, 아침 공기가 그나마 제일 시원하니 저절로 발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버스 모두 배차 간격이 짧아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버스 좌석도 여유로워 느긋하게 앉아 간다. 버텨내야 할 하루치 일을 앞둔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창 밖 스쳐 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제법 괜찮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좀 다르다. 일과를 마치고 에너지가 바닥을 향해가는 때, 버스정류장에 가기 위해 온종일 햇볕에 달궈진 오후의 도로를 걷는 일이 만만찮다. 남은 기력마저 사그라들 지경으로 무덥다. 퇴근하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버스는 붐비고 눈은 저절로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래도 이 버스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 준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이어지는 나날들을 잘 견디며 산다.
얼마 전 퇴근길, 두 번째 버스로 갈아탄 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기 위해 하차 문 앞에 섰다. 무심히 문께 시선을 두다 양쪽 문 가운데 코팅되어 붙어있는 두 개의 글귀를 발견하였다.
"하차 전 미소하나 챙겨가세요^^"
"다음 정류장 : 퇴근 후 행복"
버스요금도 아닌, 승하차 시 주의할 점도 아닌, 건조한 안내문과는 색과 결이 다른 문구 두 개.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무표정했던 버스 안이 난데없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기억해 두고 싶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운전석을 흘끗 돌아보았다. 기사님은 앞을 보고 운전에 열중하고 계셨다.
요 근래 새로 붙여진 것일까? 원래부터 있었는데 이제야 본 것일까? 다른 버스에도 똑같이 붙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차에만 붙어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오지랖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마침 하차 문이 열리기도 해서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내리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두 글귀가 계속 곁을 맴돌았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남윤잎 작가의 그림책 <버스>의 장면들이 흙 속의 감자처럼 줄줄이 떠올랐다. 그림책 속 승객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