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대한민국' 하나원, 새로고침을 시작하다
"긴데(근데)…'프로젝트'가 뭡네까?"
죽을 고비를 넘겨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북향민에게 '프로젝트'라는 단어는 또 하나의 국경이었다. 같은 말을 쓰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번 손을 들고 일일이 뜻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70년 분단'이 언어 사이에도 휴전선을 그어놓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의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풍경은 달라졌다. 지난 3월부터 보안 관리하에 교육생들에게 스마트폰이 지급됐다. 교육생들은 모르는 단어와 문제를 AI에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 군대식 점호도, 버스·카드 사용법을 가르치던 기초 교육도 사라졌다. 대신 외출과 숙박 면회가 이뤄진다. 운전면허 도로주행과 장거리 기차여행 등 울타리 밖 경험도 늘어나고 있다. 교육관 안에는 조리기능사 시험장과 똑같은 조리실, 헤어·네일아트 실습실, 3D 프린터와 스마트팜 장비까지 들어섰다. 마치 한국 사회 전체를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대한민국 예습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최용석 원장이 있다. 그는 북향민을 위한 법이 제정된 1997년부터 관련 정책의 뼈대를 세워온 인물이다. 하나원 화천분소장,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을 거쳐 지난해 11월 하나원 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보안에 어긋나지 않으면 무조건 자유롭게'라는 철칙을 내걸었다. 파격적인 지시에 맞춰 직원들이 머리를 싸맨 결과가 '스마트폰 개방과 AI 교육'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첫 관문, 하나원이라는 '작은 대한민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로고침 중이다. 2026년 7월 14일(화) 제3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관리와 통제에서 자율과 자립으로' 전환하고 있는 하나원의 오늘을 최 원장과의 문답으로 짚어봤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호칭은 이재명 정부가 도입한 '북향민'으로 통일했다.
아래는 최 원장과의 일문일답.
Q. 하나원은 어떤 곳인가.
A. 1999년 설립된 하나원은 북향민들을 체계적 정착과 적응을 돕기 위한 시설이다. 과거에는 국정원 등에서 신원조사가 끝난 북향민이 별도의 적응교육 없이 곧바로 사회로 나갔다. 그러다보니 의사소통도 어렵고, 문화도 달라 취업과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교육한다. 교육생들은 12주 동안 총 400시간에 걸쳐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배운다. 직업교육과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 법률과 정착지원 제도, 성평등 등 대한민국 국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시민교육을 받는다.
특히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하나원에서는 교육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경험에 맞춰 직업을 정할 수 있도록 기초 직업교육을 제공한다. 개별 경험과 언어 수준, 특성 등을 모두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다. 한식조리, 제과·제빵, 바리스타, 네일아트, 피부·헤어미용, 도배·장판, 요양보호, 용접, 중장비 등 23개 과정을 운영한다. 교육생은 이 가운데 두 가지를 골라 기초·체험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식조리실은 국가자격시험장과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져 교육생들이 익숙한 장소와 도구를 이용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반 한식조리사 합격률이 대략 50% 정도라고 하는데, 하나원 교육생들은 합격률은 80%에 달한다.
Q. 최근 하나원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A. '보호와 통제'보다 '자율과 자립'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철조망을 걷어내고 아침·저녁 점호와 군대식 의례를 없앴다. 외출과 숙박 면회를 허용하고, 교육생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운전면허 도로주행과 장거리 기차여행 등 외부 활동도 확대했다.
특히 지난 3월부터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촬영 기능은 제한하지만 검색과 AI 등 나머지 기능은 사용할 수 있다. 교육생들은 수업 중 이해하지 못한 외래어나 전문용어를 검색하거나 AI에 묻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들은 의학용어나 약 복용법, 운전면허시험 내용도 모두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과거에는 모르는 말이 있어도 부끄러워 매번 손을 들고 묻기 어려웠다고 한다. '프로젝트'라는 말을 모르는 분도 계셨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 지급 전에는 보안과 금융사기 등을 우려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정보 접근과 자립 능력을 높이는 순기능이 더 큰 것 같다.
과거 컴퓨터교육의 목표는 직접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출력하는 정도였다. 코로나19 이후 화상수업과 비대면 행정이 일상화되면서 교육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현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블루투스 기기, 화상회의 프로그램 등을 직접 사용한다. AI로 정보를 검색하는 방법을 배우고 3D프린터와 스마트팜 등 새로운 기술도 체험한다. 하나원 안에서 한국 사회의 기술과 생활방식을 최대한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Q. '제3국출생 청소년'이 하나원의 새로운 이슈다.
A. 과거에는 북한을 나온 뒤 비교적 빨리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교육생의 50% 이상은 중국 등 제3국에서 15년 이상 장기 체류하다 입국한 분들이다. 자연스럽게 자녀(청소년)의 90% 이상이 '중국 출생'이며, 한국말보다 중국어가 훨씬 유창하다. 이 아이들을 일반적인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어머니의 불안정한 체류 경험과 가족 분리, 탈출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나원은 중국어가 유창한 선생님을 모시고 AI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 특별 학급에서 8주간 한국어 적응 교육도 한다.
Q. 하나원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A. 역설적이게도 '하나원 이후'가 하나원의 과제다. 하나원 이후 북향민의 삶도 매우 중요하다. 북향민 자살률이 일반 국민의 2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북향민이 사회에 정착할 때 가장 어려운 시기는 '초반 5년'이다. 말투와 언어 차이 때문에 취업이 어렵고, 탈출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와 사회적 고립도 겹친다. 주변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힘든 일을 이야기할 사람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5년 정도 지나면 말투와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진다.
문제는 그전까지의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다. 교육생들은 하나원을 '친정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울 때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24시간 고충 상담 콜센터를 개설했다. 힘들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활발한 홍보가 이뤄진 후 하루에 4건 정도에 불과하던 상담 전화가 최근에는 하루 26건으로 늘었다. 하나원이 정서적 안정을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리려고 한다.
Q. 통일부에서는 '탈북자',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말 대신 '북향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동안 많이 바뀌어 왔는데.
A. 과거 1962년엔 체제 선전 목적의 '귀순용사', 1990년대 초엔 생계형 이주로 인한 '귀순 북한 동포' 등의 용어가 쓰였다. 상대 체제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부정적 어감이 강했다. 이후에도 쓰였던 '탈북민'은 북한을 탈출했다는 과거를 강조한다. 하지만 북향민은 남쪽과 북쪽에 고향을 둔 국민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향민은 북쪽에 고향을 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의미를 떠나 북향민을 차별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같은 한 국민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다.
Q. 보안 때문에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하고 마음에 묻어두는 교육생들도 있을 것 같다.
A. (한동안 주저하다가)하나원에 특식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근데 한 아이가 유독 특식 때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하루는 그 아이를 불러서 물어봤다. 왜 맛있는 밥을 먹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그제야 아이가 입을 뗐다.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는데, 홍수가 나서 어머니 손을 놓쳤다고 했다. (눈물을 닦으며)특식이 나올 때 혼자 맛있는 밥을 먹으면, 어머니 생각에 죄책감이 들어서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그 아이 생각만 하면 감정이 복받친다.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개인사를 들춰내는 것 같아 조심하려고 한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되풀이해 당사자의 상처가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Q. 그럼 반대로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도 있나.
A. 상당히 많다.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다 한국에 온 뒤에 변호사가 되신 분도 있다. 변호사시험에 네 번 떨어지고 마지막 다섯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다고 하더라. (웃으며)그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50세가 넘어 법무사시험에 합격한 분도 계신다. 다만 성공하신 분들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북향민이 여전히 더 눈에 밟힌다.
Q.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다. 통일에 대한 인식도 약화되고 있다.
A. 1997년 처음 통일부에 입사했을 땐, 남북 연락관들이 판문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대화했을 정도로 가까웠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남북 관계가 훨씬 더 악화됐다.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다.
특히 청년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할 필요도 있다. 과거처럼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조해서는 설득하기 어렵다. 통일이 국가뿐 아니라 개인의 일자리와 경제, 삶에 어떤 이익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유튜브와 SNS처럼 젊은 세대가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Q. 하나원을 거쳐간 북향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차별에 좌절하지 말고, 경제적 자립심을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무리하게 소비해서는 안 된다. 가끔 수료식에서 "저도 만원짜리 티셔츠 입고 다녀요. 차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10년, 20년 뒤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갔으면 한다.
Q. 1년 중 온전히 '통일'을 생각할 수 있는 날은 7월 14일뿐인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말투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북향민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산 사람이든 평양 사람이든 모두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향민'이라는 말에도 바로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오늘, 바로 그런 사소한 생각을 조금 더 해주셨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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