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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혐오의 시대, 방향 틀어야…문제 인식에 희망 느껴"

노컷뉴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한국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 심화하는 혐오를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말하며, 이를 문제로 인식하는 공감대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강은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며 "이 혐오의 시대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강은 절망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혐오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혐오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데 우리가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혐오가 일상이 되었다는 진단보다, 그것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강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 비하 논란이 불거진 배재고 야구부 사건과 관련해서도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지난달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됐다.

한강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하게 됐나' 이런 고민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중요한 사건이 나타났을 때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만약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그다음 충격이 이전 충격을 덮어서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사건을 순간적인 분노와 소비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놓인 혐오와 교육, 역사 인식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발언은 한강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국가폭력과 애도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한강은 특정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비판을 넘어, 사회가 어떤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는지, 또 기성세대가 무엇을 놓쳐왔는지를 되묻는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봤다.

한강이 한국 언론과 공개적으로 질의응답을 한 것은 2024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이후 처음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외부 활동을 줄였던 데 대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며 "그래서 좀 칩거했는데, 지금은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올해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어를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했다. 페스티벌 측은 한강을 초청해 '작가와의 대화'를 열었고, 제주 4·3을 다룬 그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공연도 공식 프로그램에 올렸다.

한강은 한국어가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된 데 대해 언어를 경쟁력의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언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을 고백하고, 진실을 토로하고, 비명을 지르는 존재의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언어로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함께 듣고 읽고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아비뇽 무대에서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연극과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의 낭독 공연이 관객을 만났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참여했으며, 한강도 공연 일부에 함께했다.

한강은 낭독 공연에 대해 "책을 읽는 것이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공연은 함께하는 경험"이라며 "문장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감정에 더해 배우들의 목소리와 움직임, 표정까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무대"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생각한 문장과 배우가 자기 몸을 통해 해석해 내보내는 음악적 요소는 서로 다르다"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책으로만 읽은 분들이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통과 애도, 기억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한강은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독자와 관객이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며 비극의 심연과 마주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 한국만의 특수한 비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반복해 온 폭력과 상실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뜨거운 아비뇽의 여름밤에 제주의 겨울을 다룬 작품이 낭독된 데 대해서도 한강은 특별한 감각을 전했다. 그는 "소설 속 눈송이와 새의 깃털, 흔들리는 촛불 같은 가볍고 부드러운 이미지들이 무거운 역사적 사건에 다가가기 위한 통로였다"고 설명했다. 비극을 직접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섬세한 감각을 통해 독자와 관객이 스스로 그 고통에 가까이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은 오는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도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노벨문학상 이후 공개 활동을 자제해 온 한강이 아비뇽에서 다시 언어와 문학, 혐오의 시대를 말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둘러싼 국내외 관심도 이어질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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