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자기혐오 고백…'록' 두른 권진아식 위로 '세이브 미'
"예전보다는 조금 받아들이는 부분이 생기긴 했지만 계속해서 따라가지 않을까요. 저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자기혐오)라서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운동 열심히 하고 잘 먹고 잘 자고 그게 최고인 거 같습니다. (웃음)"
싱어송라이터 권진아가 전곡을 록 베이스로 프로듀싱한 새 미니앨범 '세이브 미'(SAVE ME)로 돌아왔다. 데뷔 후 첫 시도다. 그는 '자기혐오'를 이야기할 때 '유구하다'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유구'(悠久)는 아득하게 오래라는 의미다.
1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메세나폴리스 놀 씨어터 합정 동양생명홀에서 권진아의 세 번째 미니앨범 '세이브 미' 쇼케이스가 열렸다. 정민재 음악평론가가 진행한 이날 쇼케이스에서, 권진아는 타이틀곡 '몬스터'(MONSTER)와 선공개곡 '레인 온 미'(Rain on me)를 라이브로 들려줬다.
소속사 어나더는 '세이브 미'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출발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조차 구원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고, 후반부에는 파멸의 순간에도 서로를 놓지 않는 '사랑의 구원'이라는 무한 루프에 다다르는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도 돋보인다. 권진아를 대표하는 '발라더'라는 수식어에 잠시 쉼표를 찍고 수록곡 5곡 전곡을 록 사운드로 편곡했다. 앨범 전반에 걸쳐 상처와 자기혐오라는 주제를 록 사운드의 거친 파동에 녹여낸 점이 특징이다. 전자(일렉) 기타의 긁는 소리(디스토션)와 거친 텍스처를 과감하게 구현하고, 생동감 있는 보컬을 지향했다.
앨범에서 록 사운드를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권진아는 "그동안 앨범에서 한두 트랙 정도 정말 제가 깊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할 때 록 사운드를 조금씩 사용했다. 이번에 전면적으로 밴드 사운드 트랙으로 채우면서 좀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며 "이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다른 제 또래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자기 '안'에서 꺼내야 하는 주제를 다룰 때, 그 장르로 록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 권진아는 "록이라는 장르만큼 분위기를 달굴 수 있는 장르가 없는 거 같기도 하다"라며 "사실 저에게는 도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라고 운을 뗐다.
권진아는 "저는 (록 장르도) 그냥 제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작업이라서 저의 일부고, 제(이번 음악)가 헤비메탈은 아니니까 제가 가진 팝적인 성격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록 사운드라고 생각해서 (청자가) 그렇게 어렵게 듣지 않을 거 같다. 스타일링으로는 '어? 새롭다'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이라면서도 "아직 모르겠다. 세상 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라고 덧붙였다.
타이틀곡은 날카롭고 뜨거운 호소력을 지닌 목소리를 부각한 '몬스터'다. 파괴적이면서도 에너제틱하게 풀어낸 사운드는 기존에 발표한 권진아의 다른 곡들과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라' '러브 유어셀프' 이런 말이 저는 잘 안 와닿더라. 되게 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문을 연 권진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어렵고, 사랑할 수 없더라도 내일로 가자는 말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게 저한테는 와닿는 말"이라며 "저의 유구한 자기혐오 역사에서 또 깊은 얘기를 꺼냈고, 저도 이번 앨범을 통해서 또 한 번 성장하게 된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토하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뮤직비디오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곳곳에 담겼다. 왠지 모르게 죄수복 같은 차림의 권진아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에 넣고, 깔끔하게 정돈된 화려한 상대에게 '역겹다'(disgusting)라는 표현을 던지기도 한다.
"저의 유구한 자기혐오 시간 속에 뺄 수 없던 게 사실 식이장애 이야기예요. 제가 어릴 때 데뷔하면서 제 얼굴도 싫고 몸매도 싫고 목소리도 싫었는데 제가 거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방법이 다이어트였고 체형 강박에 아주 오랜 시간 시달렸어요.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았고요. 자기혐오 서사의 부분을 뺄 수가 없어서… 뭐 당연히 건강한 몸이 좋은 거지만 사실 조금… 어떤 다양한 체형에 관한 이야기(하기)보다는 마르고 예쁜 것들을 많이 찬양하게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저도 자유로울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해 보고 싶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하게 됐어요."
지금, 자기혐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온 이유를 묻자 권진아는 "자기혐오 이야기는 그냥 저한테 친구 같은 존재고, 계속 따라 다니고 극복하고 싶지만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시기에 꺼낸 이유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주제"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에는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자기혐오를 꺼냈고, 이상하게 깊은 얘기를 할 때 일렉 기타의 디스토션! 좡~ 하는 소리만큼 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가 없더라"라며 "(그래서) 록 사운드를 선택하게 됐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권진아는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이런 말이 저는 단 한 번도 와닿았던 적이 없는 사람이고, 오히려 '나도 그래' '이런 어려움이 있었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아, 나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식의(보통의) 위로를 제가 잘 못 하는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전곡 록 사운드 편곡을 하며 재미있었는지 질문에 "너무 재미있다"라고 즉답한 권진아는 "그동안 정제되고 차분하고 섬세한 보컬 위주의 가창 많이 했다면 좀 더 내지르고 진한, 쨍한 소리를 많이 내다 보니까 새로웠다. 뮤직비디오나 포토(사진)도 새로운 스타일로 시도해 보니까, 내가 이 일을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협업하고 싶은 록 밴드가 있을까. 권진아는 "이번 5곡 중 4곡을 더 픽스(THE FIX)의 황현조 프로듀서랑 함께 작업해서 저는 일종의 콜라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트랙 '후 캔 체인지'(WHO CAN CHANGE)는 사실 자우림 김윤아 선배님과 같이 부르고 싶어서 연락도 드리고 좀 조율해 보려고 했는데 시기가 맞질 않아서 놓치게 됐다. 다음 기회에 꼭 정말, 작업이든 듀엣이든 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록 사운드로 가득 채운 앨범으로 컴백한 권진아는 올해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도 출연한다. "펜타포트를 겨냥해서 앨범 (발매) 시기를 맞춘 것도 있다"라고 고백한 권진아는 "확성기와 깃발을 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있다"라고 웃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하고 싶은 거는 꼭 해야 하는 사람"인 권진아는 이번 앨범이 "성적을 기대하고 낸 앨범"이 아니라, "제 세계를 보여드리고 위로와 공감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취지"로 발매한 앨범이라고 짚었다.
"정말 소중하고 정말 마음에 든다"라는 그의 미니 3집 '세이브 미'는 오늘(15일) 저녁 6시 각종 음악 사이트에서 공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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