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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역사를 파고들수록 한글, 세계에서 가장 쉽고 편하다는 거 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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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역사를 파고들수록 한글, 세계에서 가장 쉽고 편하다는 거 절감"

<외국어 전파담>(2021년 9월 출간)으로 꽤 많은 한국 독자층이 있는 로버트 파우저 작가는 필자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2025년에 나온 필자의 <한글학> 개정판 추천사를 써 주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전파 과정을 통해 새롭게 읽는 세계 문명사' <문자 전파담>(2026년 6월 출간) 출간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몹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지난 2일 마포역 뒷골목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필자와 함께 월인천강지곡 해설서 공동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바 있는 강형원 기자와 함께 해서 더 풍성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13년, 한국에서 13년 머무른 바 있고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도 6년 봉직한 바 있는 국제 유목민적 지식인이 쓴 책인지라 더 흥미롭게 완독할 수 있었다.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어가 자연스러운 그였기에 외국인임을 망각(?)한 채 더 수다를 떨었다.

"책 쓰면서 한글 전용주의자 됐다"

- 영어가 모어인 학자가 인문교양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직접 써 오셨습니다. 번역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로 사유하고 집필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요. 특히 '문자'를 다루는 책을 한국어로 쓴다는 데는 또 다른 울림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한국어로 계속 쓸 생각입니다. 다른 길은 생각도 안 해 봤어요.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큰 배움이었습니다. 원고를 쓰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제가 지적으로 성장하는 걸 스스로 느끼는 일이 즐거웠어요.

사실 이 책을 쓰면서 저 자신이 뜻밖에도 완전한 한글전용주의자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를 좀 더 써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문자의 역사를 파고들수록 한글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자 가운데 가장 쉽고 편한 문자라는 걸 새삼 절감했거든요. 문자를 다루는 책을 한국어로, 한글로 쓴다는 것이 바로 그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 '외국어 →학습 →도시 →문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보입니다. 결국 '문자'에 닿으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이 책은 앞선 작업의 종착점인가요, 새로운 출발점인가요.

"제 책들은 크게 '언어'와 '도시'라는 두 축으로 봐 주시면 됩니다. 다음 책을 의논하다가 의기투합했고, 그중에서 먼저 '문자'에 관한 책을 쓰기로 정했어요. 문자는 결국 언어라는 큰 흐름의 한 갈래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어떤 종착점이라기보다, 다음 순서인 '언어'에 관한 책으로 이어지는 매듭에 가깝습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어요."

- '문자의 유무나 발생 시기로 문명의 우열을 가르지 말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날카로운 화두입니다. 서구 학계가 라틴 문자 체계의 형성을 문명 발달의 표준 경로로 삼아 온 데 대한 비판인데, 그 한계를 자각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는지요.

"라틴 문자가 지금 전 세계에서 누리는 패권은, 따지고 보면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500년간 서양 몇몇 나라가 벌인 제국주의의 결괏값입니다. 그런데도 서양의 주류 학자들은 이 점을 거의 반성하지 않아요. 라틴 문자가 다른 문자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은근히 감춰져 있죠.

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그런 문화적 우월주의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걸 마주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바로 그 문화권 사람이라는 데서, 저부터 반성하고 싶었어요. 문자는 환경과 필요에 따라 생겨난 산물일 뿐입니다. 먼저 생겼다고, 문자가 있다고 해서 그 문명이 더 우월한 건 결코 아니에요."

- '문자를 전파한 힘센 쪽'이 아니라 '전파된 문자를 받아들여야 했던 문자의 약자의 역사를 놓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역사를 어떻게 복원하셨는지요.

"제가 지키려 한 원칙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영향 관계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미 체로키 문자에는 한글과 닮아 보이는 글자가 있어요. 하지만 19세기 초에 미국과 조선 사이에는 사실상 교류가 없었으니 한글의 영향일 수는 없습니다. 그냥 우연히 닮은 거죠.

또 하나 꼭 구분해야 할 게 있어요. '문자로 말을 기록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배운 것과, 특정 문자를 그대로 모방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료가 부족한 변방 문자일수록 이렇게 조심스럽게 교차 검증을 해야, 힘센 쪽에 가려졌던 그들의 자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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