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전쟁이 나더라도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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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다수에게 베트남 전쟁은 교과서 속 몇 줄의 역사로만 남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삶의 기억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 역시 이름 없이 자신의 청춘을 전쟁터에 바쳤던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조기동 참전용사는 스물세 살의 나이에 백마부대 제29연대 제1대대 제4중대 제1소대 무전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정글 한가운데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며 17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낸 그는,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당시의 기억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었다. 함께 웃고 생활했던 전우를 떠나보낸 아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시간들,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까지. 조기동 참전용사의 삶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청춘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의 무게였다.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져만 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지난 2일 서울시에 위치한 보훈회관을 방문해 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았다.
- 성함과 현재 나이 그리고 참전하셨을 때 소속하신 부대 이름과 나이를 말씀해주세요.
"이름은 조기동이고 현재 나이는 82세입니다. 그리고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소속한 부대는 9사단 백마부대 29연대 1대대 4중대 1소대 소속이었으며 무전병으로 복무했고, 당시 참전했을 때 나이는 23살이었습니다."
- 참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68년에 김신조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부대가 의정부 노고산 일대에서 대간첩 작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1m 넘게 쌓인 겨울에 개인호를 파고 장기간 경계 근무를 했죠. 그러다가 부대로 복귀해서 진지를 만들던 중, 중대본부 행정병이 혼잣말로 '베트남이나 갈까'라고 한마디했는데, 그 말을 듣고 제 이름까지 함께 지원자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월남 파병이 결정됐고, 화천 오음리에서 한 달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13박 14일 동안 항해해서 베트남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미리 말하지 못했고, 청량리역에서 형과 형수가 배웅을 나와 눈물로 인사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의 생사에 달린 소대의 목숨과 통신
- 처음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나트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죽기 아니면 살기다'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누구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무전병이었기 때문에 제가 죽으면 소대와 중대의 통신이 끊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였고, 전쟁에서는 용기보다도 상황을 빨리 판단하고 살아남는 요령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 베트남 전쟁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셨나요?
"처음에는 분대장으로 배치됐지만 나중에 무전병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베트공이 소대장과 무전병을 가장 먼저 노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보직이었습니다. 그래도 무전병은 소대장 바로 뒤에서 이동하면서 상급부대와 계속 통신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제가 죽으면 통신이 두절돼 부대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베트남전은 전선이 따로 있는 전쟁이 아니라 정글을 수색하다가 적을 만나면 바로 전투가 벌어지는 게릴라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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