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 한탄하며 부른 노래의 문화적 가치

지난 7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內坪里). 겉으로 보이는 마을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내평리는 내촌, 평림, 사촌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안쪽에 있다고 '안골' '내촌(內村)'이다. 들판에 있는 마을은 '들모실' '평림(坪林)'이다. 냇가 옆은 '냇가데미' '사촌(沙村)'이다. 내촌과 평림의 첫 글자를 따서 '내평'이 됐다.
내평은 '안쪽 들판'이다. 영산강 지류인 지석천이 감싸고 흐른다. 분지형 땅이다.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벼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었다. 생존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다른 길'이 목화와 삼(대마)이었다. 천변 모래가 섞인 사질토는 물 빠짐이 좋았다. 목화와 삼 재배지로 맞춤이었다. 목화를 많이 심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베를 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실을 뽑았다. 한밤에도 베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길쌈'이었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길쌈은 아낙네들의 일상이 됐다. 한데 모여 옷감을 짜는 모임도 만들어졌다. '길쌈 두레'다. 내평 아낙네들이 짠 베는 인근 능주장과 남평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자연스레 마을이 '길쌈마을'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길쌈은 너무 힘들었다. 삼을 베고, 찌고,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찢어 실을 잇고, 베틀에 앉아 허리와 다리를 쓰며 베를 짜야 했다. 노동은 고되고,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낙네들은 눈물겨운 노동의 고통을 '노래'로 이겨냈다. 수십 명씩 모여 길쌈 두레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동의 고단함과 졸음을 달래는 길쌈노래가 탄생했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신세 한탄으로 시작된 노래였지만, 어느새 서로를 다독이는 연대의 노래가 됐다. 노래는 단조로운 동작을 흥겹게 풀어냈다. 덩달아 생산성도 높아졌다. 노래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딸에게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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