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주저앉아도... 동자동 화가가 쪽방을 떠나지 않는 이유

윤용주님이 쪽방 생활을 시작한 지 내년이면 만 20년이 된다. 거리 노숙과 길 건너 남대문 쪽방촌을 거쳐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왔다. 그는 직함이 많다. 2024년까지 동자동 주민들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지금도 운영위원으로 활동한다. 마을은행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의 조직·연대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양화를 그려왔고, 2017년도에는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한 직업 화가이기도 하다. 짐작되듯, 그는 질병으로 두 다리를 잃은 최 중증 장애인으로 쪽방에서 살고 있다.
최 중증 장애인의 쪽방 살이
몇 년 전 기후 위기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우리는 삶 자체가 재난이니까."
기후 위기가 주거 위기를 심화하는 것은 더 없는 사실이나, 재난과도 같은 삶은 쪽방 주민들에게 시절을 가리지 않고 지속 되었다. 직전에 살던 쪽방은 환기와 통풍이 안 돼 천장이 내려앉았다. 큰비가 내릴 때는 정화조가 넘쳐 벽체를 타고 인분이 스며들었다.
"지금 이 방은 괜찮은데, 요 밑 9-19번지 지하에 살 때는 습기가 차서 천장이 주저앉았어요. 내가 천장을 이만큼 뜯어냈어요. 뜯어내고 싱크대 쪼가리 같은 걸로 얽어준 거예요. 근데 이게 방에서 요리를 하고 그러니까 김이 올라갈 거 아니야. 축축한 게 나중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버린 거지. 누워 있는데 주저앉아서 머리 이마빡도 까지고."
지금 그의 쪽방은 건물 출입구에서 족히 10미터는 기어야 들어갈 수 있다. 발이 되어 준 전동휠체어는 길가에 둘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몇 군데 거쳤던 쪽방 중 지금 방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 근 20년 동안 1층 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 전동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여러 차례 이동한 결과 지금 방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이곳도 1층이란 것을 빼곤 매일반이던 걸 동료 주민들이 합판을 깔아 복도와 화장실 입구의 높이를 맞추고, 화장실 벽에 손잡이를 설치해 변기에 오를 수 있게 해 줬기에 지금의 꼴을 갖추게 된 것이다.
동자동, 이윤과 권리가 부딪는 곳
윤용주님은 동자동 쪽방 주민조직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 사업 추진을 위한 활동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 차관과의 면담에도 참여하였다.
"저번에도 만났지만 뭐 하겠다, 뭔가 정말 할 것 같이 대답은 하지만 뭐 그게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고 (...) 이 정부가 끝나고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 또다시 또 없던 일로 돼버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부 임기 안에 어떻게든지 간에 지구 지정이라도 해 놓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어떻게든 힘을 내서 싸워야만 되지 않나."
그는 정부가 토지·건물주들 설득을 핑계로 스스로의 역할에 태만한다고 비판한다. 2025년 초, 국민권익위원회와 동자동 쪽방 주민들, 활동가들 간의 간담회가 진행된 바 있다. 당시 권익위 담당자는 제삼자의 입장을 전제로 '왜 그 노른자 땅에 그분들이 재정착을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위치'는 적절한 주거의 7가지 구성 요소(유엔 주거권 일반논평 4)의 하나일 만큼 장소성이 중요하다는 것, 가난한 이들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기존 생활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참여자들이 무수히 설명했지만 그에겐 가닿지 않았다. 동자동이란 동네는 부동산 가치로 금세 환가 되고, 주거권 운운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분에 맞지 않은 소비를 탐하는 욕심으로 폄훼되었다.
"저는 이곳이 아무리 비싼 땅이라고 해도 이곳에 살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든지 다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공공개발이 이루어짐으로써 이제 개발이 투기가 아닌 그 지역 주민들의 정착, 재정착이 가장 큰 개발의 이슈가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여기가 그런 시발점이 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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