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 빵 꾸러미 사업 꼭 해보고 싶어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우리밀 빵의 고소한 향이 가득한 진주시 호탄동 '베이커리 밀알'. 이곳의 빵은 모두 우리밀로 만든다.
밀알 베이커리를 운영한 지 3년째인 김영미(45) 대표는 2005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경남연합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20여 년간 여성농민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우리밀 판매를 시작으로 체험교육과 학교 식생활 교육, 우리밀 라면과 밀키트 개발, 베이커리 운영까지 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우리밀의 가치를 알려왔다.
농촌 소멸이 현실이 되고 국산 밀 자급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금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 밀을 심고 우리밀 빵을 굽는다. 지난 13일 김영미 대표를 만나 우리밀과 함께 걸어온 여정과 그가 꿈꾸는 우리밀의 미래를 들었다.
- 처음 우리밀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밀을 지켜야겠다'는 거창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남편과 농촌에서 살고 싶어서 진주시 금곡면에 신혼집을 마련했는데, 마을에서 우리밀 농사를 짓던 어르신 한 분이 재고가 많이 쌓였다며 좀 팔아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렇게 판매를 도와드리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밀이 토종밀이더라고요. 마침 저는 전여농 활동을 하면서 토종 씨앗을 지키는 운동도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이건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작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만남이 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 같아요."
- 우리밀 판매에서 체험과 교육까지 활동을 넓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농부들이 생산한 밀을 그냥 원물로만 팔아서는 가격도 낮고 지속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밀을 더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반죽놀이를 하는 체험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쿠키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고, 학교에 가서 식생활 교육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밀을 알리게 됐죠.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계속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농촌에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교육도 하고 체험도 하게 된 거죠.
봄이면 교육기부 형태로 학교 아이들과 함께 우리밀을 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밀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배우고, 수확도 하고, '밀사리' 체험과 우리밀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까지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이어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씨앗이 자라고 빵이 되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우리 농업과 먹거리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죠. 저는 이런 경험이 우리밀을 알리는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밀 베이커리를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체험을 했던 분들이 '우리밀 빵은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자주 물어보셨어요. 마침 금곡농협 로컬푸드 안에 자리가 생겨서 '이왕이면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우리밀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빵집을 시작하게 됐어요. 남편은 오전에 나와 반죽하고 빵을 굽고, 저는 오후에 나와 포장도 하고 손님도 맞으면서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 흔히들 우리밀은 빵 만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 정말 많이 들어요. '우리밀은 빵이 잘 안 된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처음부터 우리밀로만 빵을 배웠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게 더 익숙한 거죠. 손님들도 신기해하세요. '다른 빵은 먹으면 속이 불편한데 여기 빵은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아프신 분들도 생각보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와서 '빵이 참 고소하고 속도 편하다'고 말씀해 주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 우리가 좋은 먹거리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 우리밀 라면도 직접 개발하셨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죠. 그 당시(2016년)에는 우리밀로 만든 라면가 거의 없었어요. '누군가는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밀과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하다 보니 원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방부제를 넣지 않으니 유통기한도 짧았어요. 결국 소비자들은 대기업 제품과 가격을 비교하게 되고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빚도 많이 졌어요.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우리밀로도 라면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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