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1년차, 반도체 ETF 고점 매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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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ETF가 연일 신고가를 찍던 날, 뉴스는 "AI 슈퍼사이클"을 외쳤고 커뮤니티는 "지금 안 사면 후회한다"고 들끓었다. 나는 그 열기 속에서 매수 버튼을 눌렀다. 내 분석이 아니었다. 시장의 탐욕이 나를 움직였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나는 라캉이 됐다.
욕망의 문제: 나는 무엇을 보고 샀는가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실적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국내 반도체 ETF가 연일 오를 때, 나는 조용히 숫자를 들여다보는 대신 화면 속 빨간 숫자들이 만들어내는 열기에 빨려 들어갔다. 남들이 흥분할수록 나도 흥분했고, 남들이 "이건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할수록 나는 그 말이 내 판단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그 종목의 적정 매수가 알림을 설정해뒀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했다. 매일 신고가를 갱신하는 주가를 보자, 이러다 영영 못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주가가 갱신됐으니 목표가도 갱신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증권가 컨센서스가 '매수'라는데, 나도 지금이라도 매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음의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내가 원한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 주식시장은 이 착각이 가장 날카롭게 작동하는 곳이다. 수백만 명의 욕망이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고, 그 가격이 다시 욕망을 자극한다. 오르기 때문에 사고 싶어지고, 사고 싶어지기 때문에 오른다. 어느 순간 나의 '사고 싶다'와 시장의 '오르고 있다'는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나는 그렇게 고점 근처에서 욕망을 샀다. 진짜 문제는 그 고점을 지나봐야만 고점이었음을 안다는 것이지만.
과정의 문제: 원칙대로 팔았는데 왜 이렇게 아픈가
그러나 나에게도 브레이크는 있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미리 정해둔 '트레일링스탑' 원칙이다. 고점 대비 일정 비율 하락 시 해당 종목의 절반을 매도하는 건데, 감정이 아니라 규칙을 기준으로 삼는 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지킨다. 왜냐면 고점 대비 주가가 하락해도, 당장 손해 보고 팔기 싫고, 내가 산 매수가가 얼마인데 최소한 그 정도는 다시 오르겠지, 하는 본전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규칙대로 매도 버튼을 눌렀다. 대상은 바로 욕망의 고점에 산 반도체 ETF. 산 지 일주일도 안 돼 내가 고점에 산 걸 깨달았고,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결국 절반을 매도했고, 결과는 이성의 승리였을까?
아니, 결과는 손실이었다. 실제로 그 종목은 며칠 후 다시 상승세를 이어갔고, 내가 하락장에 판 매도가뿐 아니라 상승장에 산 평균단가를 웃돌았다. 결국 이익의 절반을 시장에 내놓은 셈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아주 나쁜 질문이 떠올랐다.
"이 원칙이 틀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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