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가야 지역에서 가야금 소리로 시작한 여름 여정

여름 여행은 간결해야 제맛이다. 부산스럽게 다니는 대신 한줄기 그늘 바람에 느긋하게 쉬어가야 태양이 사납게 대들지 못한다. 술래를 피해 꽁꽁 숨어들 듯 혹독한 볕으로부터 잘 숨는 것이 여름 여행의 비결이다.
그늘과 땡볕 아래의 후텁지근함이 서로 달랐던 지난달 21일엔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로 들어섰다. 가야금길이란 예스러운 도로명과 어울리는 '우륵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다.
주말임에도 주차장이 한적했다. 주차 후 어슬렁어슬렁 3분이면 박물관까지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을 바라보니 발길이 주춤거렸다. 뜨거운 볕이 지반을 뚫을 듯 당당해서다. 그때 눈에 들어온 근처 정원그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발을 구르자 산뜻한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렸다. 마주한 곳엔 가야금을 뜯는 우륵이 앉아 있다.
유튜브에서 평소 즐겨 듣던 가야금 연주곡 "렛 잇 비 Let it be"를 찾아 틀었다. 묘하게도 우륵이 든 가야금에서 울리는 소리 같았다. 영국 태생 멜로디가 가야금 명주실이 빚어낸 음색에 이토록 자연스럽게 어울리다니. 들을 때마다 낯설지 않은 건 음과 음 사이 여백을 품은 가야금의 힘일 것이다. 마음 깊이 스며드는 둥~기덕의 힘. 연주가 끝날 때까지 그네에 앉아 초록 바람을 바르고선 "렛 잇 비!(순리에 맡기겠어)"를 되뇌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경북 고령 우륵 박물관과 소리 체험관
'우륵 박물관'은 가야금과 우륵, 전통 음악과 현악기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현 박물관 자리도 우륵이 음악 활동을 펼쳤던 장소로 전해진다. 우륵을 배출한 대가야(고령 중심)는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훑고 지났을 텐데 상세한 내용은 기억에서 잊혔다. 그래도 왕산악(고구려·거문고 제작), 박연(조선·아악 정리)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알려진 우륵만큼은 또렷하다.
소국으로 분열된 가야를 음악으로 통합하려 애쓴 '가실왕(대가야 왕)'은 우륵에게 각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담은 가야금 12곡을 만들게 했다. 우리의 K팝이 국경을 넘어 세계를 잇는 모습을 보면 가야금 12곡으로 결속을 다지려던 가실왕의 구상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나 대통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조국의 쇠퇴를 감지한 우륵은 가야금을 안고 적국인 신라로 망명한다. 우륵은 신라에서 음악문화 발전에 공헌하며 대가야의 혼을 지켜낸다. 우륵이 가져온 가야 음악은 진흥왕의 문화예술 정책에 힘입어 신라 궁중음악으로 거듭난다. 적국의 문화라고 홀대하지 않은 진흥왕, 위험을 무릅쓰고 투항한 우륵, 두 사람의 혜안 덕분에 우린 지금도 가야금의 섬세한 울림을 누릴 수 있다.
박물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야금 12곡에 담긴 의미를 비롯해 가야금의 변천사와 재료·제작 과정·주법까지 가야금의 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아정한 음색의 정악 가야금부터 개량된 산조 가야금, 화려한 음색을 지닌 25현 가야금까지 실물을 보며 각각의 특징을 비교할 수 있다. 가야금 형태에 따라 부위별 명칭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재료로 쓰이는 오동나무 건조장도 둘러볼 수 있으며 거문고와 해금, 앙금 등 전통악기의 음색도 들어볼 수 있다. 규모는 아담해도 가야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부족함 없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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