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OO아' 이런 말이 그냥 튀어나와요" 열다섯 남학생들의 고백

사인펜을 쥔 손이 잠깐 멈칫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2학년 남학생은 존중 서약문을 한 번 소리 내 읽더니, 옆 친구를 툭 치며 "야, 이거 진짜 지켜야 되는 거임?" 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다. 던지는 말은 거칠었는데, 글씨는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손끝을 조금 오래 바라봤다. 열다섯 살의 허세와 그 밑에 깔린 진심이, 한 획 안에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13년째 교단에 서 있지만, 남중의 언어는 여전히 나를 긴장시킨다. 쉬는 시간 복도에 서 있으면 욕설이 인사처럼 오간다. "야 이 OO아"로 시작해 서로의 외모를, 성적을, 집안을, 게임 실력을 놀리는 말이 쉴 새 없이 부딪친다. 교실 뒤에서는 누군가의 별명을 두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그 말의 절반은 사실 친밀함의 표현이다. 거칠게 부딪치며 정을 확인하는 게 이 나이 사내아이들의 방식이라는 걸, 나는 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다. 웃자고 던진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그대로 박히고, "장난인데 왜 진지해"라는 한마디가 그 상처 위에 한 번 더 얹힌다. 놀리는 아이는 기억조차 못 하는 말을, 놀림당한 아이는 밤마다 곱씹는다. 같은 말을 누구는 애정으로, 누구는 칼로 받는다. 그 경계는 말한 사람이 아니라 들은 사람의 자리에서 갈린다.
그 경계를 아이들 스스로 감각하게 하는 일, 그것이 교사인 나를 오랫동안 붙들어 온 숙제였다.
금지의 언어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교직 초년의 나는 '하지 마'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 말이 아이를 바꾼 적은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닫는 데 몇 해가 걸렸다. 혐오 표현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그런 말 쓰지 마라"라고 막아서면, 아이들은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교사가 없는 곳으로 말을 옮길 뿐이다.
그래서 올해 우리 학교 역사동아리 '피스메이커스' 아이들과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나는 한발 물러서 있기로 했다. 어른의 훈계 대신 또래의 언어로, 금지 대신 체험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캠페인 부스는 그렇게 아이들 손에서 만들어졌다. 가르치려는 부스가 아니라, 느끼게 하려는 부스였다.
기획 회의에서 아이들이 가장 오래 붙든 낱말은 뜻밖에도 '재미'였다. 재미가 없으면 남중 아이들은 부스 앞에 서지도 않는다는 걸,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현실 감각이 반가웠다. 교사가 짜 준 프로그램이었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눈높이였다.
동아리 2학년 김OO의 말이 그 마음을 잘 보여 준다.
"솔직히 '존중하자' 이러면 애들 다 도망가요. 그래서 게임처럼 만들었어요."
그러더니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근데 준비하면서 제가 제일 찔렸어요. 저도 게임하다가 친구한테 막말 많이 했거든요. 문구 짜다가 '어, 이거 나잖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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