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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이들에겐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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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이들에겐 잔혹동화

2021년 3월이었다. 베이비박스로 온 아이들중 유기 아동의 보호초지 경로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속절 없이 시설로 가고 있었다. 출생정보가 전혀 없는 유기아동에게 입양과 가정위탁 제도가 멀쩡히 있는데 왜 입양부모나 위탁가정이 아닌 보육시설로 가는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지역 가정위탁지원센터를 찾았다.

지자체로부터 가정위탁 사업을 수탁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었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담당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내용은 위탁가정 모집 현황, 교육 관련 업무, 사례 관리 건수 등이었다. 묻고 싶었던 건 일반위탁가정 발굴 사업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교육하고 관리하는데도 벅차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도 규모가 제법 큰 법인의 업무생태계 안에서 순환근무라는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직원들이었다. 업무의 전문성을 갖추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위탁가정을 발굴하거나 지역 사회 안에서 인식을 개선하는 등의 새로운 사업을 펼치는 원대한 일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사회복지사인 그들은 각자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가정위탁제도의 현실

2003년 가정위탁제도가 생겼을 때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이미 어느 정도 예정돼 있었다. 유교적 문화가 짙게 밴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대개 피를 나눈 가족의 일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잃으면 조부모나 친인척이 나섰다. 그것도 없으면 시설이 받았다. 혈연과 시설 사이의 공백에 낯선 타인이 자리를 잡는 문화는 없었다.

이름은 가정위탁이었지만 절대적인 비중은 혈연이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구조는 같다. 전체 위탁가정의 약 65%가 대리양육가정으로 부르는 조부모 위탁이다. 친인척까지 합치면 위탁가정 열에 아홉은 혈연 중심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어른이 부모 잃은 아이를 자기 집에 들이는 일은 제도가 허락한 뒤에도 좀처럼 늘지 않았다. 비혈연 위탁가정은 2022년 기준 974가구다. 전체의 12.8%다. 2003년 353가구에서 시작해 22년 동안 세배가 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위탁가정은 2009년 이후 계속 줄었다.

분모가 작아지는 동안 비율이 커 보이는 착시다. 일반위탁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혈연위탁이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대리양육가정 즉 조부모의 고령화가 혈연위탁 가정의 모수를 줄였다. 그 빈자리를 일반위탁이 채워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실상 국가는 위탁제도를 지방에 떠넘기고 방치했다.

가정위탁지원센터는 전국 시도에 설치됐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틀만 만들었다. 실행은 지자체의 몫이었다. 지방이양사업으로 분류된 이 사업은 다시 민간복지법인에 위탁됐다. 국가에서 지자체로, 지자체에서 민간법인으로.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아이를 가정에 연결하는 일을 국가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방관했다.

민간법인이 이 사업을 수탁하면 대개 다음 해에도 같은 법인이 맡았다. 경쟁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래 수탁한 기관이 전문성과 사업연속성을 쌓아야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그 기관 실무자는 순환근무로 교체된다. 전문성은 사람이 아니라 서류로만 남는다.

예산 구조는 이런 관행을 단단하게 만든다. 지자체가 법인에 내려보내는 사업비는 매년 비슷한 항목으로 채워진다. 새로운 위탁가정을 발굴하거나 지역 사회와의 연계를 넓히는 시도는 제한된다. 관행이 예산을 만들고 예산이 관행을 공고화했다.

각자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최선들이 모인 자리에 가정위탁을 활성화시킬 힘은 없었다. 예산이 없고 권한도 제한적이고 인력은 순환된다. 23년 동안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계의 문제였다.

의지의 문제 아니라 설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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