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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밖에서 권력을 지킨다,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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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밖에서 권력을 지킨다, 그들이 사는 세상

1960년대 경호실에 공채로 임용되었던 한 퇴직 경호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일화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나오며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가, 근무 중이던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요원에게 잠시 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경호요원은 단호하게 답했다. "이 손은 각하를 경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서류가방을 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는 미국 경호요원의 직무 인식과 역할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호는 권력에 대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기능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만일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의 요청이 있기 전에 이미 경호관의 손이 먼저 움직였을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 대통령이나 군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그들의 복장 속에 숨겨진 것은 단지 권총과 무전기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가 경호요원에게 부여한 보이지 않는 명령, 즉 헌정질서를 끝까지 지켜내라는 집단적 서약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서약은 단순한 문장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헌법에 대한 충성, 정치적 중립,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원칙은 선언하는 순간보다, 그것을 실제로 지켜내는 과정에서 훨씬 더 큰 긴장과 고통을 요구한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설수록, 유혹과 압력 또한 강해지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가 어디를 가든 그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형성된다. 세계 각국의 경호기관은 바로 그 경계선 위에서, 권력과 헌법 사이의 긴장을 견디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대 SS] 대통령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하여

미국 대통령을 둘러싼 경호원의 검은 선글라스와 귓속의 이어피스는 이제 세계 정치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충성'이라는 단어를 연상한다. 그러나 미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이 처음부터 헌정질서에 충성하는 기관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이 조직의 출발점은 대통령 경호가 아니라, 국가의 화폐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수사 기능에 있었다. 남북전쟁 직후, 달러는 통일된 신뢰를 상실한 채 혼란 속에 놓여 있었고, 그 틈을 타 위조지폐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미 SS는 이러한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 재무부 산하에 설치된 수사기관으로 출발했다. 즉, 이 조직의 기원은 권력 보호가 아니라 국가 질서 회복에 있었다.

대통령 경호가 미 SS의 핵심 임무로 전환된 계기는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901년 9월 14일,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뉴욕 버펄로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미국 사회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대통령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대통령 개인이 고용한 사적 조직에 맡겨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이 사건은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냈다. 결국 미국은 국가 책임 모델을 선택했고, 미 SS는 대통령 경호 임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되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경호의 성격을 사적 보호에서 공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사실이 곧바로 헌법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남북전쟁과 재건시대를 거치며 연방 권력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던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호하는 조직은 특정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미국은 대통령 경호의 근거와 범위를 점차 법률 체계 속에 명문화했다. 연방법 18 U.S.C. §3056은 미 SS가 보호해야 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며, 범위를 법적 기준에 따라 제한했다.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인,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 외국 정상 등 보호 대상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 정해졌다. 이는 경호의 기준을 권력의 판단이 아닌 제도의 통제 아래 두려는 장치로서, 충성을 개인이 아닌 헌정질서로 이동시키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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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 조항의 핵심은 단순한 보호 대상의 열거에 있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경호 권력이 어디에 의해 통제되는가 하는 방향 설정에 있다. 미 비밀경호국은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이 아니라, 국토안보부 장관의 지휘 아래 놓인 연방 기관이며, 예산은 의회의 심사를 통해 통제된다. 대통령은 보호의 대상일 뿐, 경호 권력을 지휘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러한 위치 설정은 경호기관이 권력의 중심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다시 말해 경호는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지만, 대통령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구조로 설계된 셈이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미 SS는 조직 내부의 일탈이나 논란에도, 정치권력의 사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의 현장은 언제나 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긴장을 유지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 시기에는 후보자와 경호팀이 정치적 열기와 분열이 응축된 군중 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 이때 군중은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잠재적 위협과 정치적 감정이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이 된다. 미 SS 요원들은 후보자의 선동적 발언을 바로 곁에서 들으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반응도 드러내지 않은 채 군중의 움직임과 위험 요소를 통제해야 한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동의나 판단이 아니라, 오직 위험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다. 지지자와 반대자를 동일한 잠재적 위협이자 동시에 보호해야 할 시민으로 인식하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서 '헌정에 대한 충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무적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 상황이야말로 경호기관이 누구에게 충성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다. 대통령이 연단에 올라 논란이 될 발언을 쏟아내는 상황에서도, 미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무전에는 오직 인파의 흐름, 출입 통제 상황, 차량 대기 위치와 같은 정보만이 오간다. 그들에게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경호 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관심의 초점은 말이 아니라 위치이며, 정치가 아니라 위험이다. 이러한 구분은 경호의 기준이 권력의 메시지가 아니라 법과 임무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법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이런 냉정한 태도 속에서 미국식 경호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대통령을 보호하되, 대통령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영국 왕실 및 특별경호 RaSP] 왕실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유럽에서 국가 경호기관의 활동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그 가운데 영국은 또 다른 형태의 충성 구조를 보여준다. 영국은 여전히 왕과 왕실을 가진 나라지만, 왕은 더 이상 통치자가 아니라 헌정 질서 속의 상징이다. 이 상징을 보호하는 조직이 바로 전문 경호부서인 '왕실 및 특별 경호'(RaSP: Royalty and Specialist Protection)라는 특수조직이다.

이름만 들으면 왕실의 개인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영 RaSP는 런던 광역경찰청의 전문 작전지휘부에 속한 경찰 조직으로, 영국 왕실과 정부 고위 인사, 외국 정상의 경호 안전 등은 물론 왕실 거주지의 경비 등을 책임지고 있다. 과거에는 왕실과 총리 등의 경호가 별도 조직에서 담당되었으나, 2015년 예산과 조직 효율화의 차원에서 일원화되었다.

RaSP는 소수의 상시 무장 경찰 조직으로서 테러 위협 대응과 국가 상징 인물 보호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구조는 영국 정치의 헌정적 위상을 잘 드러낸다. 왕을 보호하는 사람들은 왕의 월급을 받는 사병이 아니라, 경찰의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다. 그들이 따르는 직속 상관은 왕이 아니라 경찰청장이며, 조직의 예산과 운영 역시 의회와 내무부의 통제를 받는다. 왕은 보호의 대상이지만 지휘의 중심은 아니다. 다시 말해, 영국의 경호체계는 왕실을 국가의 상징으로 존중하면서도, 주권의 최종 근거는 국민과 의회에 있다는 헌정 원칙을 분명히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사례는 경호기관이 특정 개인의 사적 충성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최고 권위의 상징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보호의 대상과 통제의 주체를 분리하는 구조가 오히려 제도적 안정성을 높인다. 경호는 왕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국가의 상징과 공적 질서를 유지하는 헌정적 기능으로 이해된다. 이 구조는 상징의 보호와 권력의 통제를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이는 경호가 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보조 장치로 기능해야 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처럼 영국의 경호체계는 왕실의 위엄을 보존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와 공적 책임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독특한 모델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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