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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넘게 같은 방에서 제삿밥 먹는 두 선비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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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넘게 같은 방에서 제삿밥 먹는 두 선비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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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천은 화순군 서남권 들녘을 살찌우는 젖줄이다. 이양·청풍·춘양면 흘러 능주면에서 화순천 받아들여 도곡면 적시고 나주시 금천에서 영산강과 만난다. 지난 6월 27일, 지석천이 첫 숨을 틔우는 어머니 품 같은 이양면 증리로 향했다.

초여름 열기가 대지에 넘쳤다. 옥수수 수염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짙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파도처럼 오갔다. 길은 한적했다. 아스팔트 갈라진 틈새로 풀이 자라나, 까만 도로가 여남은 걸음 간격으로 파란 줄로 반듯하게 잘렸다.

이양의 여름 여정

지석천의 고향이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산세가 깊고 조밀했다. 물줄기는 날것 그대로 청량감을 뿜어냈다. 이 깊은 산골 마을 서정에 담긴 기억과 함께 이양의 여름 여정을 시작했다.

조그만 표지석이 정암 조광조 초장지(初葬地)가 이 동네였다고 일러준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암의 시신을 벗 양팽손이 거두어 장사 지내고, 서원 세워 억울했을 넋을 위로했다. 마을 초입 쓰러져가는 창고 건물 아래로 조그마한 비석 하나, 서원이 있던 자리였다는 표지다.

최익현이 발문하고 양재경이 세웠다. '숭정후 오 기유 삼월 안격서(崇禎后 五 己酉 三月 日 安格書)', 어렵사리 해독하니, 1909년 음력 3월에 안부를 묻는 글을 올리며 기록한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최익현은 1906년 대마도에서 죽었는데. 양재경이 1918년까지 살았으니 글을 미리 받아 놓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땡볕 아래서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 머릿속까지 뜨거워졌다. 향토 사학자를 만나게 되면 물어보리.

의문은 뒤로 두고 물길 따라 내려오니 쌍봉사다. 조그마한 연못에 연꽃이 화사하게 반긴다. 사천왕이 부릅뜬 눈으로 세속의 번뇌를 매섭게 꾸짖는 천왕문을 지났다. 탑 닮은 3층 건물이 맞이한다. 날렵하게 치솟은 처마 곡선과 비례미가 아담하면서도 당당하다. 대웅전이다.

뜰 가득 보드라운 잔디, 클로버가 군데군데 무리 지어 하얗게 꽃을 피웠다. 그 위로 독경 소리 은은하게 흐른다. 클로버 꽃도 불심(佛心)에 젖어 드는 듯하다. 마당을 따라 늘어선 웅장한 느티나무들, 그늘이 짙다. 나무 아래서 스마트폰 켜고 절 이력 들추어 보았다.

사람 사는 일에 엮여 천년 세월 순탄치는 않았구나. 신라말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했다. 고려 무신 정권 때 최우의 아들 만전과 만종이 거처하며 사세가 융성했다. 조선조에 이르러 왕실의 지원이 있었다고 하나 조광조를 배향하는 죽수서원에 속하면서 세 부담으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긴 세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산중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잘 간직했다. 대견하다.

목조탑 형식의 건물로 법주사 팔상전과 쌍벽을 이루었다는 대웅전, 화재로 소실되어 복원 후, 보물의 지위를 잃었다. 당당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협소했다. 주불인 석가여래좌상과 좌우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그 앞으로 방석 두 개, 이만으로도 공간이 꽉 찼다. 본당의 역할은 뒤편 극락전이 대신하는 듯했다.

극락전 앞 흰 고무신 한 켤레. 열린 문으로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요사채 앞엔 접시꽃이 만발했다. 너른 밭은 검은 비닐로 줄지어 가지런하게 덮었다. 골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보는 듯하다. 주지 스님 성정이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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