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미사' 거리에서 만난 한국 현대미술

멜번을 찾는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르는 골목이 있다. 벽마다 화려한 그래피티가 빼곡하게 그려진 호지어 레인(Hosier Lane). 한국에서는 이곳을 본래 이름보다 '미사 거리'로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 드라마가 종영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 골목에는 인증 사진을 남기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드라마 속 배우들이 서 있었던 자리를 둘러보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페더레이션 스퀘어가 나온다. 그리고 그 한편에는 영화와 방송, 게임, 디지털아트를 소개하는 영상문화공간 ACMI(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 멜번 여행(6월 30일부터 7월 6일까지)에서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지난 5일, 마침 ACMI에서는 'The Vinyl Factory: Reverb'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5월 22일 부터 8월 31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주 화요일, 수요일은 휴무).
이번 전시는 음악을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빛, 공간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는 전시였다. LP가 돌아가는 소리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벽면을 뒤덮은 영상과 설치 작품이 이어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라서일까. 음악이 하나의 거대한 공간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번 전시회 중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보다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 음악을 끝까지 들었고,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전시장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멜번에서는 문화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스며든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Reverb를 모두 둘러본 뒤 자연스럽게 ACMI의 상설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났다. 전시의 끝자락, 별도의 상영실 하나가 마련돼 있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독립된 전시실에서 의자에 앉아 한 편의 영상을 온전히 감상하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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