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 마린과 박지현의 차이
산나 마린은 핀란드의 여성 정치인이다. 34살에 총리 자리에 올라 세계 최연소 총리 기록을 세웠다. 젊지만 정치 이력은 짧지 않다. 21살에 사회민주당의 자당이면서 청년 조직인 사회민주청년당에 입당해 25살에는 당 지도부에도 입성한다. 27살에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지방 의회 의원에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다. 시 의회 의장에도 선출된 마린은 사민당 지도부에도 이름을 올렸다. 30살에는 하원 의원에 당선돼 중앙 정치로까지 진출했다. 34살이던 지난 2019년 중앙 정부의 교통부장관을 거쳐 총리로 발탁돼 4년간 핀란드를 대표했다. 총리 재임 기간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성공적으로 가입하는 성과를 남겼다.
박지현은 한국의 여성 정치인이다. 26살이던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23살이던 2019년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처음으로 폭로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영입돼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패배 이후 당 쇄신 차원에서 공동비대위원장에 전격 임명됐다. 하지만 곧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패배하자 3개월만에 물러났다. 두 달 뒤 열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민주당은 입당 경력이 짧다며 불허했다. 현재 30살이지만 정치 현장에서는 볼 수 없다.
산나 마린과 박지현, 두 청년 정치인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개인적 능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청년 정치인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 정치 구조와 환경의 차이다.
마린 전 총리는 20대가 되자마자 정당 활동을 시작해 당내 활동→지방의원→국회의원→중앙 정부 장관→총리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젊은 나이에도 현실과 이상을 조율할 수 있는 정치력을 10여 년에 걸쳐 키운 것이다. 반면 박 전 위원장은 신데렐라처럼 중앙 정치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박 전 위원장의 이런 등장에 같은 2030 세대 안에서도 '벼락 출세'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박 전 위원장이 대선 패배로 갈팡질팡하는 기성 정치인들을 이끌어갈 정치력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박 전 위원장이 당수로 발탁된 것은 선거에서 2030의 표심을 잡기 위한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한국의 청년 정치 조직도 크게 다르다. 마린 전 총리가 정치를 시작한 사회민주청년당은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이면서도 독자적인 정당이다. 예산과 인사도 사회민주당으로부터 독립해 있다. 그러면서도 사민당 지도부 선출에는 청년 지분을 갖고 있다. 청년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기성 정당도 그들의 말을 흘려 들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반면 한국은 청년 조직이 정당의 지배를 받는다. 당의 직능 조직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며 예산과 인사도 당에 기댄다.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의 차이는 마린과 박지현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사람은 정치적 재목()으로 성장했지만 다른 한 명은 정치적 '불쏘시개'로 소비됐다.
최근 민주당의 선출직 청년 최고위원제 도입이 무산돼 논란이다. 이 제도는 처음보는 낯선 제도도 아니다. 민주당이 지난 2015년에 도입했던 제도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 '계파 갈등' 때문에 재도입이 무산됐다면 한심한 일이다.
청년에게 최고위원 자리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국민의힘 상황을 보자. 국민의힘은 현재 청년 최고위원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공개 회의 석상에서조차 동료 최고위원으로부터 '철부지 소리한다'는 타박을 듣는가 하면 비공개 회의에서는 '나이 어린 X'이라는 막말도 들었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청년 총리, 청년 대통령이 나오려면 자리 한 두 개 만들어 주는 것보다 청년 정치 조직의 활성화와 자율성 보장이 더 필요하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상 쥐고 있는 지방 의원 공천권도 민주화해야 한다. 그래야 능력과 진심을 갖춘 청년 정치인들이 풀뿌리 정치 현장에 진출해 정치력을 키울 수 있다. 청년 정치인에 불리한 선거 구조도 장기적으로 손봐야 한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미래 세대가 정치 무관심에서 탈피하도록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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