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씨가 대림동 최씨가 되는 '이상한 나라'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최혜경(가명)씨는 작게 숨을 고른다. 상담원이 성함을 묻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씨, 유, 아이, 띄고, 에이치, 유, 아이, 제이, 아이, 엔, 지요."
CUI HUIJING(가명). 여권에 적힌 그의 이름이다. 알파벳 열 개를 또박또박 불러 주고 나면,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의 침묵 뒤에 종종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저... 본인이세요?"
이름은 외국인인데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서일 것이다. 혜경씨는 중국 연변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 중국동포이다(최혜경은 이 글에서 고안한 가명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아주 일반적이다. 엄연한 우리말 이름을 가졌음에도 중국 동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박철호(朴哲浩)는 PIAO ZHEHAO, 즉 '퍄오 저 하오'로, 김영화(金榮花)는 JIN RONG HUA, 즉 '진룽화'로 불리는 상황을 겪는다 - 기자 주).
할머니도, 어머니도, 학교 선생님도 그를 "혜경아"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崔慧景(최혜경)이라고 표기를 했지만, 그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조선어 독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여권은 그 이름을 중국어 병음으로만 적는다. 최혜경은 그렇게, 국경을 넘는 순간 CUI HUIJING이 되었다. 그 열 글자는 매번 그가 '본인'임을 의심 받게 만든다.
표기가 딱지가 될 때
다행히 한국의 직장 동료나 주변 친구들은 그를 최혜경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온라인 회원 가입, 본인 인증, 예약 시스템. 대문자 하나가 다르거나 성과 이름 사이 띄어쓰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일치하는 정보가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마주하는 일이 다반사다. 'CUI HUIJING'과 'Cui HuiJing'과 'CUI HUI JING'은 기계에게 서로 다른 세 사람이다. 가끔 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입력해도 본인을 입증하기 어려워 결국은 대면 서비스로 찾아갈 때가 허다하다.
그리고 열린 고객 대기실에서, 중국 원지 발음대로 "추이후이징 님!" 하고 호명되는 순간이 있다. 모국어로 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제 이름의 중국어 발음으로 불리며 낯선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여기저기서 꽂히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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