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파란색이죠?"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세 가지

몇 해 전 수업 중, 한 학생이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짚어 주려는데, 다른 아이가 이렇게 되물었다. "선생님은 파란색이에요?" 겉으로는 정치 성향을 묻는 말이었지만, 속뜻은 '선생님도 편향된 것 아니냐'는 견제였다.
이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요즘 교실에서는 교사가 혐오 표현을 지적하면 "선생님 좌빨이에요?", "전교조예요?" 하고 되받는 일이 흔하다. 어떤 학생은 그 장면을 몰래 녹음하고, 어떤 학부모는 '정치 편향 교육'이라며 민원을 넣는다. 정당한 생활지도조차 자칫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로 되돌아올 수 있는 현실 앞에서, 13년째 교단에 선 교사조차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교사는 없다. 지난 겨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문에서 응답 교사의 다수가 교실 내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정작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편향됐다는 민원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앞자리에 꼽혔다.
심각성은 누구나 아는데, 손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요즘 애들이 이상하다"는 한마디로 닫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몇몇 아이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그렇게 떠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다시 역사를 펼쳐야 한다. 역사는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이 처음이 아님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이미 기록해 두었다.
역사가 증언한다, 불안은 늘 '희생양'을 찾았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은 수만 명을 '마녀'로 몰아 처형했다. 흥미로운 것은,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가 흑사병의 상흔과 소빙기의 기근, 그리고 끝없는 종교전쟁으로 사회 전체가 극도의 불안에 빠져 있던 때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탓'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표적은 늘 과부, 가난한 여성, 이방인처럼 힘없는 이들이었다.
수업에서 이 대목을 가르칠 때 꼭 덧붙이는 것이 있다. 마녀사냥이 그토록 넓고 빠르게 번진 데에는 '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487년,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말레우스 말레피카룸)라 불린 책이 나왔다. 누가 마녀인지 가려내고 어떻게 처벌하는지를 적은, 말하자면 혐오의 '매뉴얼'이었다. 마침 반세기 앞서 등장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이 책을 유럽 전역에 수십 판씩 찍어 실어 날랐다. 손으로 베끼던 시대라면 한 마을에 머물렀을 광기가, 인쇄기를 타고 대륙을 건넌 것이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때의 인쇄술은, 오늘의 무엇일까?"
게다가 마녀 고발은 어느새 이웃끼리의 '놀이'처럼 번졌다. 미운 이웃을, 재산이 탐나는 과부를, 조금 다른 사람을 지목하기만 하면 됐다. 죄책감은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말 뒤로 숨었다. 집단이 함께 손가락질할 때, 개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는다. 오늘 교실에서 여럿이 눈을 맞추며 함께 낄낄거리는 그 조롱의 풍경은, 이 장면과 무섭도록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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