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 'N% 성과급'이 불붙인 초과이익 논쟁…분배냐 투자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한 이른바 'N%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반도체 기업이 거둔 막대한 초과이익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기업의 성과를 임직원과 원·하청 노동자, 사회 전체가 폭넓게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과, 불황과 글로벌 기술 경쟁에 대비해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산업과 노동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장관들도 기업의 초과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뚜렷한 온도 차를 드러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재투자를 통한 성장'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공정한 분배를 토대로 한 사회계약'을 우선순위에 두며 사실상 상반된 해법을 제시했다.
김정관 "풍년은 즐기는 시간 아닌 미래 준비할 때"
김정관 장관은 16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현재 반도체 호황은 특수한 상황"이라며 "기업의 초과이익은 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호황이 곧 사회 전체의 호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호황이 계속되는 비즈니스는 없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 전체 매출을 웃도는 규모로 투자하고 있다"며 "우리도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전심전력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심지어 수익 이상으로 재원이 더 투입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전날 열린 'AI 시대의 기업 투자와 노동의 미래' 토론회에서도 "AI 혁명 시대에는 기업의 이익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경 속 요셉이 7년의 풍년 동안 곡식을 비축해 흉년에 대비한 일화를 언급하며 "풍년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1970년대 북해 유전에서 얻은 부를 생산적 투자보다 소비와 재정지출에 사용해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한 영국의 '자원의 저주' 사례를 거론하며 "한 시대의 횡재가 다음 시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부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AI와 지방 투자, 산업 생태계 구축을 한국 경제의 '3대 승부처'로 제시하며 "여기서 잘못된 투자나 의사결정을 하면 경제와 기업은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노동 정책에 대해서는 기존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호하기보다 산업 변화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사 관계에 대해서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를 경쟁하기보다 '어떻게 함께 더 크고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화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내 엇박자 지적에는 "큰 이슈인 만큼 정부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전체적인 큰 물줄기를 타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김영훈 "기업 성과, 독자적 혁신만의 결과 아냐"
반면 김영훈 장관은 지난 14일 열린 'AI 기술혁신에 발맞춘 새로운 사회 혁신의 길' 토론회에서 기업이 거둔 대규모 성과를 기업만의 몫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은 "기업이 거둔 천문학적인 성과는 기업의 독자적 혁신만으로 이뤄진 결과물이 아니다"라며 "글로벌 시장의 특수한 환경과 정부의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 수많은 원·하청 노동자의 땀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천문학적인 AI 성과는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이익의 총량"이라며 "'투자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분배가 다시 건강한 재투자로 이어져 상생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드는 것이 사회계약의 요체"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누구의 기여로 만들어졌고,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기업별 성과급 교섭만으로는 원·하청 격차와 미조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그는 "플랫폼·프리랜서·알고리즘 노동 등 기존 노동법과 사회보장체계로 충분히 보호하기 어려운 노동자가 늘고 있다"며 "청년과 미조직 노동자,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도 사회계약 설계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할에 대해서도 "정답을 손에 쥔 심판자가 아니라 창발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대화의 촉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투자와 산업 전환의 속도를 강조한 김정관 장관과 달리, 김영훈 장관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노동자의 참여와 사회적 숙의에 더 무게를 둔 셈이다.
경영계 "이익은 혁신의 대가" vs 노동계 "사회적 환원 필요"
노사단체의 입장도 두 장관의 시각차와 비슷하게 갈렸다.
경영계는 기업 이익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신규 채용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재투자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은 임금이 아닌 경영성과의 사후 배분인 만큼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고 밝혔다. 지급 기준이 단체협약으로 고착되면 기업의 투자 여력과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도 "초과이윤을 직접 환수하거나 사회연대임금 재원으로 활용하면 산업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사회적 재분배에는 기업 이익보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추가 세수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기업 성과가 정부 지원과 원·하청 노동자의 기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초과이윤을 산업과 사회 전체로 폭넓게 환원해야 한다고 맞섰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성과급을 국가나 이사회가 일률적으로 통제하면 단체교섭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사회연대교섭과 공급망 상생기금 등을 통해 원·하청 간 성과 공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겨레 민주노총 청년특위 위원장은 "초과이윤을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활용하고, 추가 세수는 고용·산재보험과 청년 일자리 등 사회안전망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 생태계 기금 등 절충안도 제시전문가들은 산업 생태계 투자를 위한 기금 조성 등 절충안도 제시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정흥준 교수는 "성과급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며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함께 배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승일 정치경제학 박사는 기존 반도체 세액공제를 폐지하거나 별도의 횡재세를 부과하는 대신, 초호황기에 받은 세제 혜택의 일부를 반도체 생태계 기금으로 의무 출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령 영업이익률이 25%를 넘을 경우 영업이익의 5%, 30%를 넘을 경우 10%를 기금에 출연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개발과 반도체 인재 양성, 협력업체 노동자 복지, 전력망 구축 등에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홍익대 박명호 교수는 "기업 이익과 정부의 추가 세수는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이익의 배분과 재투자는 주주와 경영진, 노동조합 등 기업 이해관계자의 자율적 결정에 맡기되,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추가 세수는 일반회계와 분리한 장기 기금으로 적립해 산업 인프라와 인재 양성, 미래 재정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 역시 투자와 분배를 절충한 해법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기업 이익을 미래 산업에 재투자한다는 점에서는 산업계의 투자론을 반영하면서도, 투자 대상을 개별 대기업에 한정하지 않고 소부장 기업과 지역, 인재, 산업 인프라까지 확대해 성과 확산 효과를 함께 노린 정책이라는 해석이다. 직접적인 이익 배분 대신 산업 생태계 전체의 성장 기회를 넓히는 '투자를 통한 성과 확산' 모델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투자와 분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초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산업 경쟁력과 사회적 성과로 함께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N% 성과급' 요구를 계기로 시작된 논의가 기업별 임금 교섭을 넘어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조세정책을 아우르는 사회적 의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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