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혼' 상 수상 임재경 "떳떳하게 사는 게 기자의 멋"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은 한국 언론 민주화와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대표적인 올곧은 언론인의 한 분이다. 90세에 이르기까지 딸깍발이 언론인의 의롭지만 외롭고 힘든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원로이다.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현)는 제21회 '기자의 혼'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하며 "지식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을 실천해 온 살아있는 전범(典範)"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제21회 기자의 날인 4일 오전 11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렸다.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국내 모든 시상식을 통틀어 가장 짧을 것 같은 수상소감을 남겼다. 짧은 수상 소감이었지만 위트가 넘쳤다.
"(상 이름이) '기자의 혼'으로 돼 있다. 그런데 '기자의 혼'이라는 의미는 좋고, 특히 기자들 중에서 싸우다가 고생하신 분들, 그러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자의 혼' 상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기자의 혼'이라는 말은 지나치다. 기자들의 혼이라고 하지 말고, '기자들의 멋'이라고 하면 좋겠다. '기자들의 혼'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하다. 기자들이 무시무시하게 살아야 하나? (저는) 재미없게 살았지만 기자도 재미있게 살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 기자들의 멋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의 시 '뱀(le serpent)'의 전문인 <너무 길다(trop long, too long)>가 생각났다. 그는 지난 2021년 단재상 언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축사에서 "70년대 유신체제를 함께 겪고, 그 후에도 우리를 이끌어준 임재경 선배가 '기자의 혼' 상을 받는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라며 "(임 선배가 지금) 90세인데 100세 넘어서까지 건강하시라"라고 축하를 보냈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중앙정보부 통제반이 우리와 함께 9시에 출근해서 편집국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지시에 의해서 '이건 빼고, 이건 제목을 줄이고, 이건 넣고' 이런 식으로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는 시절을 살았다"라며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다"라고 지난 시기를 회고했다.
이어 "(이러한 언론 통제는) 10·26 지나서 전두환 (정권) 때까지 계속됐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말>지를 내고 보도지침 사건이 일어나면서 유신 이래 독재정권이 어떻게 언론을 옥죄어 왔는지를 드러내주었다"라며 "그때 분노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온 임재경 선배가 90세가 되어 ('기자의 혼') 상을 받으신다니 이는 우리의 비극적인 시대에 벌인 언론의 투쟁을 기록하는 중요한 푯대가 될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두환 신군부 규탄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강제해직에 투옥까지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군부 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해직과 투옥을 겪고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새 언론 창간을 주도한 인물로, 한국 현대 언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1년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1974년 <한국일보>로 이직했다.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역임한 그는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하는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강제로 해직되고 투옥까지 당한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1979년 10·26 사건(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이후 유신체제가 붕괴됐으나 정치, 사회 현실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1979년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으며, 신문마다 전두환 사진이 뻔질나게 게재되는 등 군의 정치 개입이 이미 깊어지고 있었다. 전두환은 4월 중순 보안사령관과 합수본부장, 중앙정보부장(서리)을 겸임해 헌법상의 문민통솔 원칙과 중앙정보부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5월 초부터 "계엄 철폐", "군정 종식"을 외치는 대학생과 일부 시민 중심의 데모가 가열차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5월 15일 경 절정에 이르렀다. 1980년 4월 말,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도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모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울 아현동 기독교 선교교육원에서 유인호(중앙대 교수), 이문영(고려대 교수), 이효재(이화여대 교수), 장을병(성균관대 교수, 국회의원), 한완상(서울대 교수)과 이돈명·홍성우 변호사 그리고 소설가 이호철과 언론계의 송건호· 임재경 등이 참여했다. 선언문의 서두는 이러했다.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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