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최초 커밍아웃 의원이 보여준 사진에 학생들이 술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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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동성혼을 인정 않는 민법에 위헌 판결을 쟁취할 것이고, 동성혼 법제화도 얻어낼 테니 한국도 함께 실현시켜 나갑시다!"
세 차례 낙선 경험도 그를 무너트리지 못했다. 진홍색 셔츠 차림의 한 일본 정치인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퀴어퍼레이드 행렬 속에 섰다. 그는 '일본 최초 커밍아웃 정치인'인 오츠지 가나코 전 일본 중의원 의원이다.
이번 한국행에서 그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건 서울퀴어문화축제였다. 1995년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한국 유학을 선택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오츠지 전 의원이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자신의 SNS에도 "뜨거운 하루였지만, 매우 활기찬 참가자들이 많은 퍼레이드였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서울퀴어퍼레이드 사진과 동영상을 여러 개 올리면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15일 <오마이뉴스>에 "한국의 퀴어퍼레이드는 자유롭고 힘이 넘친다"며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나온 기수들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조회수가 83만 회 가까이 나왔다.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 한국의 시민운동의 역량이 2024년 내란에 저항한 시기를 지나 겹겹이 쌓인 걸 이렇게 목격하고 있다"고 감탄했다.
'한국은 지난 정권의 탄핵 시기에 많은 성소수자가 집회에 참여했다'는 기자의 말에 오츠지 전 의원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반정부적인 움직임에도 퀴어들이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며 "10년 전 안보법제 개정 반대 집회 당시 퀴어들이 '아베, 물러가'라고 적힌 큰 풍선을 만들어서 띄운 일이 대표적"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도 "'도쿄 프라이드'의 경우 (서울퀴어문화축제와는 다르게) 기업에서 내는 부스나 차량이 많고, 당사자와 기업이 협력하는 모습을 주로 보이는 '해피 프라이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8살 최연소 의원에서 세 번 낙선까지
오츠지 전 의원은 2003년 28살 나이로 오사카부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부의회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건 오사카부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2005년의 일이다. 가라테(일본의 대표적인 무술)를 잘했던, 그러나 가라테가 올림픽 종목에 없어 태권도를 배워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결심하고 한국을 찾았던 학생이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던 순간이다.
그는 2013년 참의원 선거(비례)에서도 비례 순번을 승계받아 잠시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7년, 2024년 중의원으로 계속 당선됐으나 2026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며 치러진 직전 선거에서 중도개혁연합(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합당) 의원 후보로 나와 낙선했다. 그는 낙담하는 대신 "도전하는 야당 의원에게 낙선은 따라다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3년부터 7번 출마해서 3번 당선, 비례 승계 1번, 3번 낙선 경험이 있다. 2007년 낙선하고는 그림책 <탱고는 두 아빠가 있어요>를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하는가 하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돌봄 현장에서 일하며 사회복지 분야로도 전문성을 가진 의원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여성·성소수자 당직자·보좌관들과 만난 오츠지 전 의원은 "저도 여러 번 낙선했는데 한 번 낙선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몇 번이라도 도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만난 정치인들 중에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이들도 있다.
그는 "무엇보다 어려운 결단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입문하고, 출마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데에 경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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