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이 아니라 선언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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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라고 했다. 절묘한 표현이었다. 몇 주 전 수요일 나는 경희대학교 청운관 앞에 있었다. 오후 6시, 해가 넘어가는 참이었다. 청운관 건너편 네오르네상스관 앞에서 '6·3 지방선거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있었다. 총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그런데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시국선언이고 무엇이 발언인지 구분하기 벅찼다. 민주주의, 참정권, 자유, 정의를 벗어나는 말을 찾기 힘들었다. 학생회장들은 다루기 버거운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즈음 '선조'가 등장했다. 모 단과대학 학생회장의 발언이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오늘은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6월 10일입니다.' 나는 '선조'라는 말에서 턱 걸렸다. 선조는 누구인가? 다른 학생회장들이 '선배'라고 부르는 존재들과 같은 존재인가? '선조'와 '선배' 사이는 매우 멀어 보였다. 20분 넘게 이어지던 지루한 발언 사이에서 귀가 쫑긋한 순간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말은 없었다. 여전히 발언은 선언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큰 말들의 연속이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선조'는 '먼 윗대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 학생회장의 발언을 맥락에 따라 해석하면 '선조'는 '1987년의 청년들' 즈음을 뜻할 테다. '선조'와 '선배'의 거리, '선조'와 현재 청년세대의 격차가 저 시국선언의 발원일지도 몰랐다.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런데 '선조'라고 호방하게 외친 뒤에 따라 붙는 말들은 너무 성글었다. 발언이 갖추어야 할 '무엇'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집집마다 된장찌개 맛이 다른 것처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말맛'은 미묘하게 다르다. 지난 주말, 고향 친구가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 집회에 나가면서 SNS 게시물을 올렸다. 거기에 이렇게 썼다. '나라를 지키자.' 나는 친구가 써놓은 문구를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몇 글자 바꾸어 보았다. '나라가 지켜달라.' 짧은 문장에서 겨우 몇 글자를 바꾸었을 뿐인데 내 생각은 세월호로, 이태원으로, 고공농성장과 단식농성장으로 내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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