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온몸으로 겪은 친구가 '배재고 학생에 손 내밀고 싶다'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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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0년에 중학교 3학년이었다. 서울의 교실에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 오월을 몸으로 통과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광주에서 자란 친구다. 골목에 숨어 총소리를 셌고, 옆집 형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친구는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밤이 깊어져야 겨우 몇 마디를 꺼내 놓고는 오래 침묵한다.
그 친구에게 늦둥이 아들이 있다. 야구를 한다. 새벽에 일어나 글러브를 챙겨 운동장으로 나가는 아이다. 친구는 아들의 첫 스파이크를 사 주던 날, 신발 상자를 먼저 열어 보고 밤에 혼자 새 가죽 냄새를 맡아 봤다고 했다. 광주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아들 야구 이야기는 한 시간을 한다.
며칠 전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소리를 접했을 때 나는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저 말이 친구의 가슴 어디에 박힐지 알기 때문이었다.
배재고 앞 '근조화환' 사진 보며 친구가 한 말
친구를 만났다. 광주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친구는 휴대전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배재고등학교 교문 앞이었다.
여름이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먼저 들려야 할 자리에 검은 근조화환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쓰레기 양성 교육', '프로 지명 금지'. 죽음을 상징하는 꽃들이 교문을 향해 서 있었다. 그 곁에는 축하화환도 있었다. 아이들의 행동이 통쾌했다는 듯, 조롱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사이를 교복 입은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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